암실의 넓적부리황새
쥐 | @237S0
암실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생명체가 있다면 어떨까.
생각한다. 사실은 그럴 리 없다고. 그와의 동침은 언제나 괴상한 구석이 있다. 그를 밤에만 만날 수 있다는 것도 그랬지만, 그 밤이라는 것이 특히 그랬다. 해가 떠 있을 때면 그저 평범한 침실이었는데, 해가 지고 밤이 새어들 때면, 모든 불을 끄고 침대 위에 누웠을 때면. 아주 가까이에 놓인 사물도 분별할 수 없을 만큼 완연한 암실이 되고 만다.
초야 이래로 줄곧 그랬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침대를 나누어 쓰는 것 또한 초야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전제가 필요하다지만, 사전적 정의에 따르자면 틀린 구석은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그런 첫날밤 또한 나쁘지 않았으므로.
그 밤을 돌이킨다. 문을 여닫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는데 침대 시트가 바스락 구겨지고 매트리스가 움틀거린다. 그는 그렇게 너른 침대 위 비어 있는 한켠의 공간을 차지한다. 정적과 숨소리 사이로 손을 뻗어 가벼이 건드려 본 몸이 매끄럽고 단단하다. 보면 안 돼, 뿅? 어둠 너머에서도 분별할 수 있을 말꼬리를 붙인다. 어, 미안하다. 보면 안 돼. 처음으로 들은 목소리.
보고 싶었는데, 뿅…. 웃음 섞인 숨이 흩어진다. 그래도 아직은 안 돼. 팔이 다가와 몸을 끌어안는다. 다만 아직, 그 말을 따라 몸과 몸은 바짝 붙지 않는다. 그럼 언제까지, 뿅? 물음과 함께 간격을 줄여 파고들면, 그 품은 생각보다 더 부드럽다. 글쎄, 조금만. 그 조금이란 것이 과연 언제까지인지를 캐묻는 대신 조금만, 한 토막을 되뇌인다. 포근한 장롱 속에서 문을 꼭 닫아걸고 있는 것만 같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울린다. 누구의 것인지 헤아리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나 어둠 속에서, 체온 위에 체온을 겹친 채로 지속한다.
다시, 밤. 두껍게 칠한 어둠 속에서는 그 밖의 다른 감각들이 살아나는 법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몸을 끌어안고만 있는 무게 아래 가만히 있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매일 밤이면 견고한 몸을 더듬었다. 보면 안 된다고 했지, 만지지 말라는 말은 한 적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닿아 오는 손길을 거부한 적이 없다. 타인을 촉각만으로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그를 통해 깨달았다. 닿아 오는 감촉으로 그 모습을 재구성한다. 둥근 머리, 바짝 깎은 듯 까슬한 머리카락. 광대뼈와 얼굴형. 코와 눈썹. 그리고 눈.
도드라진 뼈를 따라 눈썹산을 타고 오른 다음, 눈썹꼬리를 천천히 매만진다. 슬쩍 타고 내려와 눈꼬리와 말캉한 눈두덩 위에 가만히 손을 대어 본다. 살갗 아래 둥근 안구가 데굴 움직인다. 속눈썹과 함께 얇은 눈꺼풀을 스윽 쓸어 보면, 깜박. 눈꺼풀이 꿈틀댄다. 꼭 눈을 뜨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언제부터 눈을 뜨고 있었나.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감고 있지 않았나. 두 손가락으로 한참이나 그 눈가를 어루만졌는데, 꼭 닫힌 눈꺼풀을 따라 속눈썹을 간질였는데. 손을 옮겨 대충 이 즈음이면 코끝 언저리겠거니 싶은 부분을 한 번 건드린다. 꾹 눌리는 감각이 코를 제대로 찾은 모양이다.
- 눈, 뜨고 있어, 뿅?
- 그런 너는.
- 뜨나 감으나 똑같잖아.
…뿅. 말꼬리를 느리게 덧붙이자 허리를 붙잡아 안고 있던 손이 등줄기를 타고 오른다. 손바닥을 더듬고, 손깍지를 껴 보는 동안 곳곳에 박인 굳은살로 말미암아 마냥 투박하겠거니 짐작했던 그의 손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섬세하게 움직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목덜미를 쓰다듬고, 둥근 머리통을 스쳐간다. 느리게 귀 뒤편을 쓸어올린다. 손길에 따라 귀가 잠시 접혔다가, 톡 펼쳐진다. 타인의 손에 의해 읽혀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간지러운 일이다. 귓가에서 따스한 열감이 번진다. 다음으로 그의 손이 향한 곳은 눈이다. 눈이 시릴 만큼의 어둠 속에서는 차라리 눈을 감는 편이 낫다지만, 다가오는 손에 맞추어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면.
슬슬 자야지. 숨소리 섞인 웃음과 함께 그가 말한다. 너도, 뿅. 그의 도톰한 입술을 슬며시 눌러 본다. 그가 멈칫, 숨을 잠시 멈추었다가 손을 떼어내자 그제야 길게 숨이 흐른다. 여전히 눈가에 닿아 있던 손이 뺨을 쓸고 떨어진다. 잘 자. 그의 손이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온다. …삐뇽. 접혔던 귀가 여전히 뜨거워서 그의 품으로 파고든다. 오늘도 심장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아침. 여전히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이전에는 본 적 없던 것이 베개맡에 하나 떨어져 있다. 한 뼘이 넘는 크기의 커다란 깃털. 이리저리 매만져 보면 어딘가 부드러운 동시에, 까슬한 촉감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남편은 넓적부리황새인 걸까, 뿅….
넓적부리황새. 무려 사람만 한 크기라는 넓적부리황새. 커튼 틈새로 새어드는 햇빛에 깃털을 비추어 본다. 시답잖은 말임은 알고 있었으나, 일찍 일어나는 새의 깃털을 주운 셈이다. 나쁘지 않은 예감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