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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o

맘마 | @momumma_

명헌은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넘쳤다. 개미가 줄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하루 종일 쳐다보고 있기도 했고, 나비의 집을 찾겠다고 정신없이 나비를 쫓아가다 길을 잃은 적도 있었다. 조금 더 자라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 마음의 선이 알고 싶었다.

 

명헌은 별났고, 또 과감했다. 사람의 마음의 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했다. 그래도 명헌이 선을 넘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호기심이 깊은 만큼 명헌은 그 아슬아슬한 선을 능숙하게 쟀다. 여기까지는 버틸 수 있지. 이 정도는 선을 넘어버릴 테니까 하지 않고.

 

그런 명헌에게 있어 처음으로 선을 성큼 넘어버리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그게 바로 현철이었다. 명헌은 현철의 선이 어디인지 알았다. 그리고 제가 그 선을 조금 넘는다고 해도 현철이 그런 자신을 기꺼이 받아줄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명헌은 정말로 이 선을 넘어도 될지 거의 1년을 고민했다. 명헌이 처음으로 선을 넘은 것은, 두 사람이 사귀기 시작한 날이 되었다.

 

 

“현철. 좋아해 뿅.”

 

 

훈련 중에 갑자기 들려온 명헌의 목소리에 현철이 명헌을 쳐다봤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말투와 표정, 목소리에 현철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하여튼 별난 놈.”

“아니, 그런 거 말고 뿅. 진짜로 좋아한다고.”

 

 

현철은 눈을 끔뻑이며 잠깐 그 자리에 멈춰서서 명헌을 바라봤다. 현철이 뭔가 생각하는 듯 제 뒷머리를 긁적였다.

 

 

“허어… 너는 무슨 고백을 그렇게 멋없게 하냐.”

 

 

현철의 손이 명헌의 등을 두드렸다. 다행히도 명헌은 성공적으로 선을 넘었다. 명헌과 현철의 연애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두 사람 다 머릿속에는 상대와 농구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명헌과 현철은 더 이상 같은 학교를 다니지 않았고, 같이 살지도 않았고, 다른 팀에 소속되어 농구를 했다.

 

 

 

명헌은 교양 강의실에 앉아 하품했다. 교수님의 눈이 이쪽으로 향하면 그제야 손을 들어 쩍 벌어진 입을 가리는 체라도 했다. 그래도 옆에서 침까지 흘리며 자고 있는 대만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생각했다.

 

 

“프시케가 큐피드의 얼굴을 확인하는 것, 페르세포네의 상자를 열어보는 것은 인간의 호기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교수의 잔잔한 목소리에 강의실에 있는 학생 대부분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명헌은 지루하다는 얼굴로 턱을 괸 채로 두 눈을 끔뻑이고만 있었다.

 

 

“촛불과 칼을 들고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 프시케를 발견한 큐피드는 사랑은 의심과 함께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흘러가듯 강의를 듣고 있던 명헌이 고개를 기울였다. 사실 상대를 의심하고 시험해본 것은 큐피드 쪽이 아닌가? 사랑하는 인간 여자와 결혼해 자기 집에 가두어두고 절대 자신의 얼굴을 궁금해하지 말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언제쯤 이 여자가 자기 얼굴을 보려 들지 시험해본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피어올랐다. 그렇게 실컷 시험해놓고 ‘사랑은 의심과 함께할 수 없다’니. 신은 참 이기적이다.

 

어느새 강의가 끝났는지 교수가 강의실을 나섰고, 자고 있던 대만이 침이 말라붙은 얼굴로 명헌을 보고 있었다.

 

 

“너 이 강의 되게 좋아하나 보네.”

“침이나 닦아용.”

 

 

명헌은 멍청한 얼굴을 하고 손등으로 입술을 문질러대는 대만을 강의실에 남겨두고 동오와 함께 먼저 강의실을 나섰다. 어어, 같이 가! 하는 대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명헌의 안에서 호기심이 일었다. 우리는 분명 연인인데, 나는 어디까지 네 선을 넘어가도 되는 걸까? 너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또 내 선을 어디까지 침범하고 싶을까.

명헌은 조금씩 더 선을 넘어봤다. 마치 큐피드가 프시케에게 그랬던 것처럼, 자신을 향한 현철을 시험했다.

 

 

“현철, 나 아파 삐뇽.”

“너 어딘데. 집이야?”

“응.”

“기다려. 갈게.”

 

 

현철은 한달음에 명헌의 자취방으로 달려왔다. 거기에는 멀쩡한 얼굴로 웃는 명헌이 있었다.

 

 

“자기 왔어?”

 

 

현철은 그런 명헌의 얼굴을 보고 헛웃음을 뱉었다. 그러다가도 뻔뻔한 명헌의 얼굴을 쓰다듬다 그런 명헌을 품에 안았다.

 

 

“안 아파서 다행이다.”

 

 

명헌은 그런 현철의 품을 파고들며 어리광을 부렸다. 산왕공고 주장 이명헌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답지 않은 모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두 사람에게는 이게 익숙했다.

 

 

“그치만 나 정말 마음이 아팠다 뿅. 자기를 자주 못 봐서.”

“그건 나도 그래, 자기야.”

 

 

아름다운 밤이었다. 명헌은 그날 자취의 장점을 온몸으로 누렸다. 늘어진 몸 때문에 다음날 강의는 자체 휴강을 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명헌은 이번에도 성공적으로 선을 넘었다.

 

 

 

명헌의 현철을 향한 억지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주말에 만나 데이트를 하던 도중, 명헌이 길을 걷다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명헌의 손을 잡고 걷던 현철이 자연스럽게 멈춰서 명헌을 바라봤다.

 

 

“나 발 아파 뿅.”

 

 

현철이 명헌의 발을 슬쩍 쳐다봤다. 고등학생 때도 지금도 풀쿼터 경기를 곧잘 뛰는 명헌을 생각하면 이건 절대로 꾀병이었다. 뜨끔한 명헌이 덧붙였다.

 

 

“신발을 새로 샀는데 영 불편해 뿅.”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알아서 변명부터 늘어놓는 명헌을 보던 현철이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현철은 별말 없이 당연하다는 듯 명헌에게 제 넓은 등짝을 내주었다. 명헌은 그 위로 올라타 다리를 흔들었다.

 

 

“우리 자기가 어리광쟁이가 다 됐네. 자주 못 만나서 그런가.”

 

 

명헌은 현철의 너른 등에 얼굴을 묻었다. 뾰옹… 하는 그 목소리에 현철은 웃었다.

 

 

 

아픈 척 갑자기 자취방으로 부르기, 사람 많은 데서 업어달라고 하기, 그다음은 데이트 때마다 똑같은 음식만 먹으러 가자고 하기였다. 처음 몇 번은 이상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던 현철이지만, 벌써 네 번째 연속으로 명헌은 현철을 카레 집으로 데려갔다.

 

 

“내가 요즘 카레에 빠졌어용. 자기가 이해해줄 거지 뿅?”

 

 

명헌은 앙큼하게 물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현철은 기가 찬다는 듯 웃었지만, 또 그 카레를 나름 맛있게 먹는 명헌을 보자니 또 뭐라고 할 수도 없어 저도 숟가락을 들었다.

 

 

“난 자기가 카레를 이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네. 천천히 먹어.”

 

 

 

그 외에도 명헌의 억지는 계속됐다. 갑작스럽게 약속 날짜를 당기거나(자기야, 나 자기 빨리 보고 싶은데 그날 말고 이날 오면 안 돼 뿅?), 이상한 취미에 대해 내내 얘기하거나(이번에 키우고 있는 씨몽키 1호가용… 2호는 좀 더 밝은 성격인데……), 괜히 힘들다고 온종일 투정(여기엔 자기 같은 선수가 없어서 너무 힘들어 삐뇽…. 솔직히 이건 현철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을 부리는 등 온갖 염병을 떨어댔다.

 

현철은 그때마다 그런 명헌을 전부 받아줬다. 덕분에 명헌은 요즘 기분이 매우 좋았다. 행복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아, 나는 정말로 사랑받고 있구나. 우리는 선을 넘어도 되는 사이니까. 현철은 정말로 내 모든 걸 사랑하는구나.

 

프시케는 큐피드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이별을 맞이했지만, 현철과 명헌은 그럴 일이 없을 듯했다. 현철은 명헌의 시험을 완벽하게 통과했다.

 

 

 

중간고사가 끝난 기념으로 명헌은 동오, 대만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한창 먹고 마시던 중, 동오가 입을 열었다.

 

 

“낙수가 그러던데, 현철이 요즘 되게 힘들어한다더라.”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이 명헌이 동오를 보며 눈을 끔뻑였다. 아, 몰랐어? 하는 동오의 목소리가 교양 강의 교수의 목소리처럼 작고 멀게 들렸다. 명헌은 미묘한 감정이 제 안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낙수와 현철 둘 다 고등학생 때부터 봐왔으니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술자리가 파할 때까지 명헌의 머릿속에는 낙수와 현철의 얼굴이 둥둥 떠다녔다. 결국 명헌은 집에 가는 길에 공중전화 부스에 들렀다.

 

달칵, 달칵, 공중전화에 동전 몇 개를 밀어 넣었다. 명헌은 익숙하게 현철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뚜르르, 신호음은 그리 길지 않았다. 현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

-자기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현철이 바로 명헌을 불렀다. 명헌이 푸시시 웃었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확답이 듣고 싶었다. 명헌이 두 손으로 수화기를 꾹 쥐었다.

 

 

“너 요즘 힘들다고… 낙수한테 그랬다며.”

-아, 그럴 일이 좀 있었지.

 

 

현철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왜 나한텐 말 안 해뿅?”

-명헌아.

“너 혹시 낙수랑…”

-이명헌.

 

 

현철의 목소리로 듣는 제 이름 세글자가 너무 생경해서 명헌은 하마터면 수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명헌은 대답하지 못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현철의 긴 한숨이 들려왔다. 명헌은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명헌이 끊겠다고 말하려 입을 열었는데, 그보다 현철이 빨랐다.

 

 

-안 되겠다, 명헌아. 우리 잠시 시간을 좀 갖자. 너 머리 좀 식으면 다시 연락해라.

 

 

그렇게 현철의 전화가 끊겼다. 공중전화 돈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명헌은 자신이 프시케를 시험하는 큐피드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명헌은 큐피드가 아니라 프시케였다. 의심으로 상대를 떠나보내는.

 

사랑은 의심과 함께할 수 없고, 현철은 떠났고, 명헌은 혼자 남았다.

 

명헌은 터덜터덜 자취방으로 향했다. 술기운에 어질어질한 몸을 이부자리에 뉘었다. 천장이 빙글빙글 돌았다. 현실감이 없었다. 분명 현철은 전부 받아줬는데. 선을 넘고, 넘고, 또 넘다 보니 이젠 현철의 선이 원래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명헌은 자신이 얼마나 그 선을 넘어왔는지 가늠하지 못했다. 선도 보이지 않는 허허벌판에 명헌은 혼자 우뚝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직… 헤어진 건 아니지 않나? 현철은 분명 머리가 식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명헌은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챠르륵, 챠르륵, 전화기 숫자판이 돌았다. 명헌은 몇 번이고 다시 현철에게 전화했으나, 현철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서너 번 이후에는 아예 통화 중이라 연결할 수 없다는 응답만 반복됐다. 아예 수화기를 들어놓은 모양이었다. 명헌은 수화기를 붙든 채 쓰러지듯 잠들었다.

 

다음날에도 현철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명헌은 제정신이 되고서야 눈물을 흘렸다. 명헌은 자기가 울고 있는 줄도 몰랐다. 뺨이 축축하다고 느꼈을 땐 스스로도 놀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세 가지 시련이든 백 가지 시련이든, 괴물의 털을 뜯어오라는 얘기든 저승의 여신에게 아름다움을 얻어오라는 얘기든, 뭐든지 다 할 테니까. 제발 현철이 제게 다시 기회를 주면 좋겠다고.

 

 

 

다음 날, 명헌은 곧바로 현철의 학교로 향했다. 오늘도 강의가 있었지만 그런 걸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명헌은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버스에 몸을 실었다. 현철의 학교 앞에 도착한 명헌은 잠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했다. 단대 건물 앞에서 기다릴까, 그랬다가 오늘 현철이 전공 강의가 없는 날이면 어쩌지. 아예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건? 하지만 거기는 너무 넓어서 명헌이 현철을 발견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고민하던 명헌은 결국 체육관으로 향했다. 현철은 분명 훈련을 하러 올 테니까.

 

명헌은 체육관 앞에 쪼그려 앉은 채 바닥을 바라봤다. 근처에 누가 씹다 뱉었는지 껌 하나가 떨어져 있고 그 위로 개미가 줄을 지어 지나갔다. 명헌은 멍하니 개미를 바라보고 앉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명헌을 보고 수군거렸다. 명헌의 시선은 여전히 개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명헌의 눈앞에 익숙한 농구화 한 켤레가 들어왔다. 명헌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현철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명헌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현철은 어디 가지 않고 그런 명헌을 기다렸다. 그런 현철의 태도에 명헌은 용기를 얻어 한 걸음 현철에게로 다가섰다. 개미들이 일사불란하게 명헌의 발을 피해 움직였다.

 

 

“현철……. 몇 가지 시련이든, 얼마나 어려운 시험이든, 내가 뭐든 할 테니까… 내가 잘못했어.”

 

 

명헌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명헌답지 않게 길고 횡설수설했다. 풀 죽어 축 처진 어깨와 푹 숙인 고개, 그리고 횡설수설하는 명헌의 도톰한 입술을 보던 현철이 명헌을 품에 당겨 안았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미안해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무슨 그런 생각까지 했어, 자기야.”

 

 

생각보다 따뜻한 현철의 목소리에 명헌이 놀란 눈으로 현철을 바라봤다. 명헌이 신기루라도 보듯 손을 뻗어 현철의 얼굴을 쓸었다. 현철의 뺨이 명헌의 손안에 들어왔다.

 

 

“화 안 났어?”

 

 

명헌의 물음에 현철이 하, 하고 웃었다.

 

 

“났지.”

 

 

현철의 얼굴을 쓰다듬던 명헌의 손이 움찔, 움츠러들었다. 역시 화났구나. 현철은 그런 명헌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아 문질렀다.

 

 

“우리 자기, 맘고생 많이 했나 보네. 얼굴이 반쪽이 됐어.”

 

 

하룻밤 만에 그렇게 될 리가 없는데도 현철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현철의 눈에는 정말로 그렇게 보였다. 이렇게까지 기가 죽은 이명헌이라니. 모질게 먹었던 마음을 살살 녹이기에는 충분했다. 어차피 신현철은 원래 이명헌 앞에서는 말랑하고 약했다.

 

 

“머리는 좀 식었어?”

 

 

명헌은 어젯밤의 통화를 기억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현철이 명헌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댔다 떨어졌다.

 

 

“난 자기가 나한테 어떻게 해도 좋은데, 어떻게 내 마음을 의심하니 자기야.”

 

 

현철의 말에 명헌이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현철은 그만큼 몸을 낮춰 다시 명헌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자기야, 카레 먹을까?”

 

 

명헌이 슬쩍 현철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현철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니, 사실 나 카페 한참 전에 이미 질렸다 뿅.”

 

 

현철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젠 제법 긴 명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신없이 여기까지 오느라 어차피 엉망이었던 머리카락이 마구 흐트러졌다.

 

 

“그럼 뭐 먹으러 갈까. 우리 자기 밥부터 먹여야겠는데.”

“고기 뿅.”

 

 

대신 내가 살게. 미안함이 묻어나는 명헌의 그 말에 현철은 웃었다. 명헌이 온갖 방법으로 자신을 떠보고 시험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현철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젯밤의 그 통화에서도 현철은 명헌과 헤어질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말 그대로 머리를 좀 식히고 연락하라는 얘기일 뿐이었는데. 이렇게 여유가 싹 사라진 명헌의 얼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의외의 수확이었다. 그래도 현철은 다시는 그런 얼굴 볼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적어도 현철의 사랑은,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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