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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 @even_slamdunk

 옛날 어느 나라에 왕과 왕비가 살았는데, 이들에겐 듬직한 자식들이 있었다. 외형으로 따지자면 모두 준수했으나, 첫째가 특히나 성격이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키가 작음에도 몸은 알찬 근육으로 이루어져 육체적인 조형미가 뛰어나다고 소문이 났다. 첫째는 이에 조심하고자 얼굴과 몸을 천으로 감추고 다녔으나, 가려지지 않는 큰 덩치와 천 위로도 드러나는 굴곡에 사람들의 열광은 끊이지 않았다.

 첫째의 아름다움이 사방팔방으로 퍼지자 수많은 사람이 그 나라로 모여들며, 아프로디테에게 바치던 경의와 찬사를 첫째에게 바쳤다. 그러다 보니 아프로디테의 제단에 오는 발길은 날이 감에 따라 줄어들다가 급기야는 이 제단을 돌보는 이가 하나도 없게 되고 말았다.

 

*

 

「에로스, 내 아들, 카즈나리. 저 아이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움에 무슨 벌을 내리거라. 이 어미의 한을 풀어다오. 저 아이가 받는 상처가 크면 클수록 이 어미의 기쁨 또한 클 것이니라. 저 교만한 아이의 가슴에 비천한 이에 대한 사랑이 싹트게 하여, 지금 저 아이가 누리고 있는 기쁨과 승리감에 걸맞은 굴욕을 안겨 주도록 하여라.」

 

*

 

 그리하여 카즈나리는 첫째, 카와타 마사시라는 인간의 방에 들어온 것이었다.

 솔직히 카즈나리는 카와타에게 별다른 사감이 없었다. 제 어미의 질투란 흔했으며 무고하게 휩쓸린 이는 많았다. 카즈나리는 에로스라는 권능 하에 쥐어진 금과 납으로 이루어진 화살을 쏠 뿐이었다.

 다만 카즈나리는 침대 위 오수에 빠진 카와타 마사시를 발견하고 금화살을 꺼내는 대신 조용히 다가갔다. 소문과 같이 근육으로 탄탄한 몸은 완벽했고, 남성스러운 얼굴과 큰 손과 발, 두툼한 입술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의도는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임에도, 긴 머리가 탐미의 소양인 시기에 삭발한 머리는 유독 눈에 띄었다.

 

 반질반질, 맨들해보이는 머리가 꼭 저를 유혹하는 것 같았다. 제 방에 소중히 모여있는 반려 돌멩이가 생각났다. 햇빛을 받아 따끈해 보이는 머리. 그 주인인 카와타는 오수에 빠져 평온한 표정과 어울려 나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 평화로움에 홀린 듯 카즈나리는 침대 옆에 쭈그려 앉아 카와타에게서 도통 시선을 떼지 못했다.

 

 소리 없이 움직인 카즈나리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카와타는 눈을 떴다. 분명 평범한 인간은 에로스인 카즈나리를 보지 못함에도 카와타의 눈은 카즈나리에게 향했다.

 

“누군가 있는 것 같았는데.”

 

 착각인가, 기지개를 켜곤 주섬주섬 몸을 일으키는 카와타에 카즈나리는 조용히 일어났다. 그의 어여쁜 돌을 닮은 이는 항상 묵묵부답으로 기다려주는 무생물체와 다르게 예민하고 생동감 넘쳤다.

 

 카와타 마사시는 무언가 달랐다.

 그것은 카즈나리에게 다가온 미해결 명제였기에 그의 흥미를 자극하기 충분했다. 무던했던 일상 속에서 찾은 새로운 자극에 카즈나리는 흥분감을 껴안으며 카와타의 방을 빠져나왔다. 하늘을 날며 쿵쿵대는 심장 소리가 디오니소스의 포도주를 처음 마신 날처럼 달큰했다.

 

*

 

 이후로도 몇날며칠 카즈나리는 기척을 죽여가며 카와타를 관찰했다. 첫 시작은 호기심. 외면을 샅샅이 훑어보며 그의 생동감을 음미했다. 몇백일 간 보아도 질리지 않는 카와타에게서 비롯된 두 번째 탐미는 그의 성장이었다. 카와타 마사시는 땅속 깊이 자고 있던 씨앗이 발아하듯 날이 갈수록 빠르게 커졌다.

 그 강인한 생명력에 카즈나리는 완전히 매료되었다. 근 1년간에 이어진 성장은 카와타 마사시를 완전히 개화시켰으며,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아프로디테가 화살통을 가진 에로스를 불러들였다.

 

*

 

「어찌하여 내 명예가 빛을 잃어야 한다는 말인가? 나의 명예가 저런 아이에게 가로채여야 한단 말인가? 어찌 저 아이에 대한 칭송은 여전한 것인가?」

 

*

 

 카즈나리는 금화살을 잡았다.

 화살통에 고이 수납되어있던 화살은 차갑고 매끄러웠다. 어두운 밤하늘 속 높게 뜬 보름달이 카즈나리가 들어온 창문에서 환하게 빛났다.

 

 카와타 마사시는 침대에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카즈나리는 금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달빛이 카즈나리가 든 화살 끝을 타고 내려갔다.

 

 폭발적인 성장을 겪은 카와타 마사시는 이전에 쓰던 침구를 바꿔야 했다. 여유 있게 맞춘 침구도 쭉 뻗어가는 카와타의 육체에 여백이 빽빽하도록 부피가 꽉 들어찼다. 그 딱 맞는 침대 중심에 카와타 마사시가 있었다.

 

 카즈나리의 눈에 카와타 마사시로 가득 찼다. 사실은 몇 번째인지, 언젠가부터 숫자를 붙이기 무색해졌다. 카와타 마사시에 대한 탐구의 이유는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의문이 풀리길 바라며 그저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카즈나리는 활의 시위를 당겼다.

 

 시선의 중심에는 카와타 마사시가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

 

“아, 이런.”

실수, 뿅.

 

 카즈나리는 감흥 없이 중얼거렸다.

 

 카와타 마사시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곤히 자고 있었다. 더불어, 그 어떠한 것도 느끼지 못한 평화로운 표정으로.

 카즈나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무던한 표정으로 카와타 방의 창문에서 떠났다.

 

*

 

 카와타 마사시는 숙면에서 깨어나 상쾌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꿈도 없는 완벽한 숙면으로부터 아른거리던 향이 여직 저를 감싸 안은 느낌이었다. 상체를 일으키자 제 베개 옆에 금빛이 아롱대 고개를 가까이했다.

 금색 실타래를 섬세하게 짠 것 같은 부드러운 깃털이었다.

 

 이런 게 왜 여기 있지?

 

 주위를 둘러봐도 연유는 알 수 없었고, 깃털이 놓여 있던 베갯잇의 끄트머리가 찢어져 있었다. 깃털에선 기분 좋은 향만 감돌았기에 카와타는 눈을 감고 향을 음미했다. 언젠가부터 제 주변에 아른대던 새벽이슬과 같은 향이 마음에 들어, 그는 부러 베개를 교체하지 않았다.

 

*

 

 여전히 사람들은 카와타 마사시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담으며 입으로 찬사를 내뱉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의 누이나 동생은 인연을 맺어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카와타 마사시만 아무 인연도 맺어지지 못하니 부모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일평생 저 혼자만으로 괜찮다고 말했으나, 부모는 기어이 아폴론의 신탁을 받아왔다.

 

 

「이 자는 인간의 짝이 될 팔자가 아니다. 미래의 인연이 산꼭대기에서 이 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 존재는 신도 인간도 그 뜻을 거스를 수 없는 괴물이다.」

 

 

 신탁을 받아온 부모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자식들과 함께 한탄했다. 카와타 마사시만이 덤덤하게 신탁을 받아들이며 짐을 쌌다. 떠날 때까지 그를 다잡아오는 가족을 저어하고 달래며, 카와타는 바위산으로 떠났다.

 

*

 

 “이런, 길이 없는데.”

 

 카와타 마사시는 산꼭대기에 올라서서 주변을 둘러싼 무성한 숲을 두리번거렸다. 꼭대기 아래를 보며 이 돌벽을 내려가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던 카와타는 제 짐에서 툭 튀어나온 것에 행동을 멈추었다.

 

“..깃털?”

 

 신기하게도 금빛의 깃털은 며칠이 지나도 부드러운 감촉과 향을 잃지 않았다. 지니고 있으면 든든하여, 이번에도 부적처럼 챙겨온 것이었다.

 금빛 깃털은 카와타의 행동을 나무라듯 꼭대기 밑을 바라보기 위해 빼든 상체를 찰싹찰싹 쳐댔다. 그래 봤자 깃털이라 아프긴커녕 간지러웠지만, 카와타는 순순히 상체를 물렸다. 그런 카와타를 칭찬하듯 깃털은 나긋하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간질였다. 깃털은 어디서 난 건지 모를 천으로 순식간에 카와타를 감쌌다.

 

“잠깐,”

 

 순식간에 제 시야를 가리는 천에 놀라 항의하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깃털은 카와타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마치, 앞으로 나아가라는 듯이.

 시각이 가려진 채 어딘지 모를 곳으로 발을 옮기기에는 다소 부담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에 되려 이 신묘한 깃털이 주도하는 대로 따르는 방법밖에 없긴 하였다.

 잠깐의 망설임을 물린 카와타는 깃털이 바라는 대로 발을 옮겼다. 제가 본 대로라면 주변은 낭떠러지일 텐데, 신기하게도 평지를 밟는 것 같았다. 제 등을 부드럽게 떠미는 감각을 믿으며 카와타는 어둠 속에서 망설임 없이 걸어갔다.

 

*

 

 깃털이 이끈 목적지까지 다다른 카와타는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 머리 위로 올라가 살랑이는 감각에 제 상체를 둘러싼 천을 풀어헤쳤다.

 

 갑작스러운 빛에 눈꺼풀을 꾹 닫았다가 열었다. 열린 시야로 새하얀 궁전이 들어왔다. 다른 세계라도 들어온 듯, 숲 한가운데 위치한 궁전은 단정하면서 품격이 느껴지는 것이, 신의 은거지와 같았다.

 

「인연이시여, 지금 보시는 것은 하나 남김없이 당신의 것입니다. 지금 듣고 계시는 이 목소리의 임자인 저희는 당신의 시종으로, 보이는 육체가 없지만 어떠한 명령도 더할 나위 없이 조심스럽게 힘을 다해 받들 것입니다.」

 

*

 

 카와타는 잘 지냈다. 워낙 적응력이 뛰어난 탓도 있지만, 괴물이라던 무성한 말과 달리 그의 짝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잡일은 목소리만 존재하던 시종이 다 하였으며 그에게 할당된 업무 또한 없었다. 카와타는 며칠간 멀뚱멀뚱하게 휴식을 취했다. 이후 그는 궁전을 산책하며 직접 할 일을 찾아냈다.

 

 카와타 마사시는 궁금했다. 그는 궁전에서 지낸 지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궁전의 주인이자 제 운명이라 점지된 상대를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었다.

 제 운명은 어떤 이인가? 왜 나를 보러오지 않는가? 이런 궁전에서 사는 괴물이라 한다면 이지는 존재하는 생명체인 것 같은데, 어이하여 내게 그 어떠한 것도 전해주지 않는가?

 제 운명에 대한 카와타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으로 머리가 복잡해, 유독 잠이 오지 않던 참이었다. 카와타는 제 옆에 소리 없이 다가와 눕는 이에 놀라 몸을 경직시켰다. 가만히 있길 수 초, 카와타는 눈을 떴다. 침대를 둘러싼 캐노피가 창밖의 달빛 한 점 들어오지 않게 막아, 카와타가 볼 수 있는 것은 어둠뿐이었다.

 

 그럼에도 카와타는 그의 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조금, 긴장이 풀린 탓일까. 손가락 한 마디의 거리를 두고 떨어진 상대로부터 시각을 제외한 감각들이 속속히 느껴졌다. 괴물일 것이라면서, 생명체는 맞는지 온기가 느껴졌다. 침구를 푹 들어가게 만든 무게감을 보아, 체구가 있되 저보다는 작은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카와타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향이었다. 후각을 덮친 향은 항상 그가 지니고 다니던 금빛 깃털과 같았다. 아니, 원본이 상대의 것이라는 걸 주장하듯 오히려 더 짙고 깊었다. 그렇다면 제 짝은 저를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

 

“잠이 안 오나용?”

 

 낮은 목소리가 카와타의 귀를 통해 들어와 심장을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처음 듣는 괴물의 목소리라기엔 듣기 좋았다. 변성기를 지난 소년 같기도 하고, 청년 같기도 한, 긁는 듯한 목소리. 카와타는 제가 들은 소릴 되새기며, 그 속에 깊게 베인 호의에 의심이 들었다.

 

“조금. 아까 잠시 낮잠을 자서.”

“그렇구나. 근데 인간은 밤에 잠을 자야 할 텐데. 자장가라도 불러줄까용?”

 

 인간은 밤에 잠을 자야 한다니. 정말 인간이 아닌 존재가 할 법한 말이었다. 그럼에도 말하는 내용은 다정하여, 카와타는 제게 허락된 다정이 어디까지일까 궁금했다.

“예.”
“뿅.. 진짜 불러달라고 할 줄은 몰랐는데.”

 

 성가시게 만들었으니 짜증이라도 내려나, 싶던 카와타는 이내 들려오는 흥얼거림에 눈을 크게 뜨며 제 짝을 바라보았다. 세간에 떠도는 자장가의 음정만 따온 흥얼거림이었다. 목소리가 좋아선지 다정한 소리여선지 계속 듣고 싶었다.

 

“자라고 불러 준 건데, 잠을 안자네용.”

“흠. 정말 불러 줄지는 몰라서.”

“음, 시종이 말하지 않았나. 여기서 당신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용. 가능한 것은 다 들어줄 거에용.”

“그럼 당신과 말하는 것도 됩니까?”

 

 뿅, 의외라는 듯 놀란 음성이 튀어나왔다. 카와타는 제 짝의 의미 모를 소리가 귀엽게 느껴졌다. 삐요옹, 고민하듯 나오는 소리에 카와타는 재촉하듯 물었다.

 

“안됩니까?”

“그건 아니지만. 굳이 나랑? 대화 상대가 필요하다면 시종은 어떤가용.”

“저는 당신과 대화하고 싶습니다.”

 

 이런,

 어떤 감정이 담겨있는지 모를 덤덤한 반응에 카와타는 제 고집에 변명하듯 말을 붙였다.

 

“곤란하게 만들었다면 미안합니다. 당신이 궁금해서 그랬습니다.”

“죄송할 필요는 없고용. 뭐가 궁금한데용?”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이야 여러 가지였다.

 당신은 나를 알고 있었나? 어떻게? 언제부터? 당신은 왜 내가 오고 나서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지? 왜 내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나? 당신은 나와 인연으로 정해진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음속 쌓인 수많은 말에 카와타는 입술만 움찔거렸다.

 

 

 카즈나리는 그런 카와타를 보고 있었다.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이더라도 신인 그에게는 해당 없는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카즈나리는 카와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근 1년을 비롯해 카와타가 고향을 떠나 제 궁전으로 올 때도, 궁전에 온 이후에도. 카즈나리는 아무리 카와타를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그를 보고 있으면 마치 제가 인간이라도 된 것 마냥, 어느샌가 자신이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이 생겨버려서.

 

 카즈나리는 눈앞에서 움직이는 카와타의 입술에 만지고 싶었다. 인제 와서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식을 하는 즉시 아프로디테의 눈에 띄어서 할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그때라면 저 입술에 닿을 수 있었을 텐데.

 

“해가 뜨기 전에 갈 거예용. 내일도 올 테니, 지금은 자용.”

“내일은 언제 옵니까?”

“빛이 없는 밤에.”

 

 왜, 라는 질문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제 가슴을 토닥이는 손에 도로 삼켰다. 제 운명의 상대와 처음 말을 섞고 맞닿은 순간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괴물이라던 예언과 달리 따뜻한 손길은 부드러웠다. 단지 말 몇 문장으로 어떠한 의문도 해소되지 않았지만, 내일을 기약하는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카와타는 어둠 속의 존재감을 느끼며 편안하게 잠들었다.

 

 손바닥 밑으로 일정한 가슴의 들썩임이 느껴졌다. 카즈나리는 무방비하게 잠든 카와타를 바라보다, 살며시 가슴팍에 귀를 대었다. 넓은 가슴팍은 따스했고 그 속에서 들리는 심장 소리는 안정감이 느껴졌다.

 카즈나리는 한동안 카와타의 심음을 곱씹다가 코 밑에 손가락을 갖다 대어 그의 숨결을 손에 훔쳤다. 항상 일방적으로 탐하던 이와 직접 말을 섞어보니 비교할 수 없는 고양감에 휩싸였다. 카즈나리는 얼핏 떠오르는 햇빛에 수 초간 미적거리다 일어났다. 들춘 캐노피 사이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카와타를 비추었다. 카즈나리는 그 순간을 눈에 담았다.

 

 

 날이 밝고 카와타는 눈을 떴다. 혹시 밤의 일이 꿈은 아니었나 싶을 적에 옆에서 햇빛을 받아 빛나는 것이 보였다.

 금색 깃털!

 카와타는 혹시 제가 가져왔던 것이 아닌가 싶어 서둘러 침구 옆 테이블을 확인했다. 테이블 보 위 보드라운 손수건에 얌전히 있는 또 하나의 금색 깃털을 확인하고 나서야, 카와타는 마음을 놓았다.

 비록, 저는 상대방의 그 무엇도 모르지만. 단순히 제가 믿어왔던 물건 하나가 상대로부터 비롯된 것임으로 호감이 가서. 깃털이 둘 사이 인연의 매개체가 된 듯한 느낌이어서. 카와타는 금색 깃털에 얼굴을 묻고 향을 맡으며 설렘을 간직했다.

 카와타가 찾은 일은 고향에 있을 때와 비슷한 것이었다. 흙을 고르며 잡초를 뽑고, 씨앗을 심었다. 궁전은 아름다웠으나 적막했다. 끝없이 펼쳐진 초록 들판은 새하얀 궁전의 강조하였으나 황량했다.

 하여 카와타는 시종에게 물어 조경을 해치지 않게끔 꽃씨를 심었다. 볕 밑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다 지치면 쉬었다. 노을이 지면 고른 흙바닥에 털썩 앉아 그 풍경을 감상했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이 흙내음을 퍼트렸다. 풀이 부딪히고, 벌레가 울며, 새가 지저귀었다.

 

 고향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그곳에 있을 때면 저를 구경하러 온 사람의 말소리로 인해 시끄러웠다. 관심을 구걸하며, 탐미를 열망하고, 헛된 이상에 환호했다. 그럼에도 카와타는 잡음 속에 가려진 소음을 사랑했다. 미키오의 둔중한 발걸음 소리, 어머니의 높은 음색, 아버지의 궐련을 내뿜는 거친 숨소리.

 카와타는 붉게 물든 하늘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지는 해의 금색 빛이 제 눈을 찌를 때까지. 눈부심에 눈꺼풀을 감고서야 카와타는 새벽의 일을 떠올렸다. 묵묵했던 심장이 다시 뛰는 것 같았다. 툭툭, 시원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난 카와타는 궁전으로 발을 옮겼다.

 

 

 검은 하늘 위로 달과 별이 빛났다. 카와타는 일찍이 저녁을 먹고 침대에 앉아있었다. 꼼꼼하게 캐노피를 풀어 빛을 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설마 달이 밝아 오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

 

 오랜만의 기다림은 떨리고 기대되었다. 우글대는 질문이 머리 한구석을 차지했으나 무엇보다도 카와타는 그저 그를 다시 만나길 바랐다. 새벽에는 그의 향취, 목소리, 한 자락의 다정을 누렸으니 이번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소리 없이 다가와 침대 한 축을 기울이는 무게에 카와타는 고개를 돌렸다. 빛 한 점 없어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없음에도 잊을 수 없는 향이 상대가 왔음을 확신하게 했다.

 

“왔습니까.”

“날 기다렸어용?”

“뭐, 보고 싶었죠.”

 

 카와타는 상대가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려 앉았다. 카즈나리는 카와타가 절 볼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카와타를 향해 다소곳이 마주 앉았다.

 

“하고 싶은 게 있나용?”

“일단 이름을 알고 싶습니다.”

“후카츠 카즈나리.”

“후카츠, 카즈나리. 후카츠 씨라고 부르면 됩니까?”

“마음대로.”

 

 카즈나리는 선뜻 제 본명을 부르며 다가오는 카와타가 신기했다. 그에게 불리는 이름은 카와타 마사시 앞의 후카츠 카즈나리라는 존재를 각인시켜주는 것 같았다.

 짧은 응답으로 무언의 허가를 눈치챈 듯 카와타는 스스럼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럼 후카츠라고 불러도? 이래 봬도 부부긴 하니까.”

“상관없다 뿅.”

“그래, 후카츠. 내 이름은 알고 있지.”

 

 제 이름을 되새기듯 말하며 호선을 그리는 입을 카즈나리는 바라봤다. 확신에 찬 눈빛이 저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뿅, 카즈나리는 의미 없는 소릴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상대는 보이지 않을 거란 생각에 행동을 멈췄으나 카와타는 답을 얻은 듯 말을 이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뿅.”

“금색 깃털 때문에.”

 

 아, 결국 금화살을 꺼내 들었던 날. 카즈나리는 새삼 그날의 광경이 생각났다. 활을 당기는 것은 본인이었음에도, 결국 맞은 것도 본인인 것 마냥. 그날처럼 팔딱이던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잠시 들은 딴생각은 제게 뻗어오는 큰 손에 흩어져버렸다.

 눈치를 못 챌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거침없는 질문에 이어 접촉 시도까지. 적극적이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가 지금까지 봐왔던 카와타 마사시는, 본래 저를 쳐다보는 이들을 싫어하지 않았던가?

 

“만져도 되나?”

“이미 손부터 뻗고 있으면서?”

“핫. 그래도 만지기 전에 물어보잖아.”

“진도가 빠르다 뿅.”

“첫날밤도 안 보내고 지금이 돼서야 처음 만져보는 건데, 이 정도면 늦는 편 아닌가?”

 

 그건 그렇지. 카즈나리는 중얼거리며 제 앞에서 멈춘 손에 시선을 두었다. 크고 두툼한 손이었다. 곳곳에 박혀있는 굳은살은 끊임없이 움직인 그의 부지런한 성정을 보여주었다.

 고향에서도 해가 떠 있는 종일 움직이며 노동을 하더니, 제 궁전에 와서도 쉬지를 않더라. 고생하는 모습이야 당연히 보기 싫었지만, 그렇기엔 본인이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을 못 버티겠는 모양이라 카즈나리는 카와타를 자유로이 두었다.

 

“예언에 따르면 인간은 아니라던데.”

“뿅”

“빛을 보면 아픈가?”

“그건 아닌데. 왜?”

“별 이유가 있어야 하나. 낮에도 만나고 싶어서 그렇지.”

 

 사실 낮에도 만나고 있는데. 다만 카즈나리가 기척을 숨기고 카와타를 일방적으로 보고 있을 뿐이지만. 카와타가 건넨 말은 정말 혹해서, 카즈나리는 잠시간 망설이다 답했다.

 

“그건 좀 곤란 뿅”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고. 아쉽네.”

 

 담백하게 감정을 전하는 말에 카즈나리는 오히려 궁금했다. 어제만 해도 그 많던 망설이는 질문은 어디 가고? 지금까지 혼자 궁전에 내버려 두다시피 한, 일면식도 없는 인간도 아닌 존재가 예언 하나로 운명의 상대가 되어버렸는데.

 카즈나리가 보아 온 카와타는 단 한 번도 절망하지 않았다. 그에게서 보인 결단은 단순히 체념이나 순종이라기보다는, 제게 부닥친 상황에 대한 파악과 적응에 가까웠다. 어째서?

 

“예언 속 괴물이라던 꼴이 궁금한 게 아니라?”

“그보다는 눈을 보고 싶었지.”

“눈?”

“항상 다정한 시선이 느껴져서.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지도 직접 보고 싶고. 그 눈을 마주하며 말하고 싶었어.”

 

 다정? 내가? 카즈나리는 카와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진심인 듯 변하지 않는 표정과 곧은 눈빛에는 순수한 호감만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카즈나리는 이 해가 없는 다감이 무서웠다. 그것은, 저를 무장해제 시키고, 가슴을 미치도록 간지럽히고 끝끝내 이 살랑이는 무언가를 내뱉게 할 것이다. 확신과 같은 예감이었다.

 그럼에도 도저히 카와타를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거부할 수 없었던 게 맞을 것이다. 카즈나리는 제게 뻗어진 손이 치워지질 않은 것을 보며 조심스레 손을 올렸다.

 

“눈 대신 손이라도 뿅”

“하하!”

 

 

 이후 카와타와 카즈나리의 생활은 조금씩 바뀌었다. 카와타가 침실의 암막을 내리는 시각은 빨라졌다. 카즈나리도 항상 카와타를 주시하다 카와타가 침대로 가면 따라갔다. 서로를 알아가며, 어둠 속에서 다정한 온기를 주고받고, 서로의 숨결을 들이쉬는 시간이 늘었다.

 

 카즈나리의 다소 무뚝뚝한 말투와 시종일관 낮은 톤의 목소리는 그에게 느껴지는 벽을 공고히 만들었다. 그러나, 카와타는 제게 안긴 괴물은 사실 말랑하고 부드럽다는 사실을 알았다. 단순히 제 피부로 맞닿는 감촉뿐만 아니라, 그 속에 있는 것들 또한.

 다소 엉뚱한 면이 있는 그만의 괴물은 사실 누구보다도 영리하여 계산을 잘했다. 그는 자신의 외면에서 나오는 높은 벽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독특한 어휘를 써 상대의 벽을 똑똑 두드려 경계를 낮추는 데 익숙했다. 타인의 거리감에 대한 적응과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행하는 선을 조율한 흔적이었다.

 

 카와타는 그런 이가 제 앞에서 하나씩 겹을 벗는 모습이 좋았다. 무장해제된 어두운 밤. 그들은 서로의 여린 면을 소중히 껴안아 줄 수 있는 시간을 사랑했다.

 카와타 마사시는 후카츠 카즈나리에게 마사시, 라고 불리면 카즈, 라고 답해주는 사이가 되었다.

 

*

 

“마사시.”

“그래, 카즈.”

“가족이 보고 싶진 않아 뿅?”

“보고 싶지.”

“근데 왜 아무 말도 안 해?”

“편지 주고받잖아. 그거면 됐지. 내가 나가봤자 혼란스럽게만 하지 않겠냐.”

 

 

“이곳을 벗어나고 싶지는 않아?”

“너가 여기 있잖아. 그걸로 충분해.”

“낮에는 혼자라 외로울 텐데 삐뇽”

“내가 혼자라고?”

“삐뇽?”

“항상 너랑 같이 있잖아.”

“삐뇻”

“내가 말하지 않았나? 항상 다정한 시선이 느꼈다고. 낮에도 눈빛이 뜨겁던데.”

 

“언제부터,”

“흠. 거의 처음부터이지 않을까. 결혼하기 전부터 알아챘으니까.”

“그걸.. 알면서 내버려 두고 있었어? 내가 아니었으면, 삐뇽.”

“글쎄다. 그 정도로 날 오랫동안 순수하게 바라본 사람은 별로 없어서 깨달을 수밖에 없었지. 카즈, 당신이 날 엄청 좋아하는구나. 알겠어서 좋던데.”

“삐뇨옹”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냥 옆에 있어 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래도,”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 좋아. 내일은 같이 앉을 돗자리도 챙길게.”

“..그럼 예쁜 거로 챙겨 삐뇽.”

“하하, 그래. 너처럼 예쁜 거로 챙겨놓을게.”

 

 

“카즈.”

“삐롱.”

“나 머리 슬슬 길러 볼까?”

“그것도 좋을지도 삐롱.”

 

“...카즈.”

“...”

“거기 있지? 이리 와.”

“삐룟”

“아무리 서운한 게 있고, 싸우게 되더라도..옆에 와줘. 나는 널 못 보잖아.”

“..삐롱.”

“그렇지.”

 

“말해줘, 카즈. 뭐가 마음에 안 들었어.”

“...왜 가족이 아픈 걸 말하지 않았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삐롱.”

“음, 잘 알고 있지. 그래서였어. 네가 다정하고, 능력이 뛰어난 것을 들키면 욕심낼까 봐.”

“그래도 인간은 가족에 한해서는 욕심내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삐롱.”

“너도 내 가족이잖아. 널 지키고 싶은 게 당연하니까 그렇지.”

“삐룟..”

“이제 풀렸어? 그럼 얼른 안겨줘.”

 

 

“피뇽!”

“왜 그래, 카즈?”

“피뇽롱핑피뇽!”

“카즈 고장 났네. 무슨 일이야. 천천히 사람 말로 해봐.”

“머리.. 피뇽”

“응 머리가. 왜?”

“하얀색 머리 피뇽.”

“아, 진짜? 새치 나왔나 보네. 슬슬 날 때이긴 한가.”

 

“카즈. 흰머리 많이 신경 쓰여? 보기 싫으면 뽑을까.”

“흰머리 있어도 멋지다 피뇽”

“그럼 다행이고.”

“당신이 어떤 모습이 되던 사랑해 피뇽”

“하하! 다행이네. 나도다. 사랑해.”

 

*

 

“마사시.”

“응, 카즈.”

“아침에 보면 테이블에 금장도와 납장도가 있을 거야.”

“음. 선물이야?”

“잘 들어. 만약 내게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납장도로 나를 찔러.”

“카즈. 잠깐만.”

“그리고 내 사랑이 의심된다면 금장도로 날 찔러.”

“카즈나리! 난 그런 거 필요 없다.”

“카와타 마사시. 기억해.”

“필요 없어. 주지 마, 버릴 거다.”

“이제 네 거니까 마음대로 해라 푱.”

 

“마사시.”

“......”

“삐졌어 푱?”

“......”

“마사시.”

“......”

“내 사랑.”

“......그래.”

“나의 마사시.”

“...그래, 나의 카즈.”

 

“미안, 푱.”

“아니. 사과하지 마.”

“표옹..”

“카즈나리. 날 못 믿어?”

“아니.”

“그럼 며칠 전에 준 건, 대체 왜?”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널 사랑해서 그랬어.”

“카즈나리. 나는 널 사랑해. 그러니 그걸 쓸 일은 없을 거야. 앞으로도 계속, 너만을 사랑하겠지.”

“나도.”

안아줘, 마사시.

 

 

 카즈나리는 저를 안아주는 두터운 팔뚝과 뜨거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힘있게 쿵쿵대는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나이가 들어도 탄탄한 육체가 뜨겁게 저를 감쌌다. 주름진 손이 주는 온기를 음미하며, 카즈나리는 마사시에게 영원을 맹세했다.

 

*

 

 「사랑이 어찌 의심과 한곳에 기거할 수 있겠는가?」

 

*

 

“마사시.”

“후욱..왜, 여보야.”

 

 후우, 훅. 힘들게 쉬어지는 숨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남은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러워서. 카즈나리는 마사시의 체향을, 숨결을, 온기를 가슴속 깊이 새겼다.

 마사시와 카즈나리는 그들이 사랑했던 드넓은 들판에 앉아있었다. 따사로운 햇볕을 내리쬐며 어여쁜 돗자리를 깔고, 산들바람에 흩날리는 꽃들을 보았다. 마사시의 정성스러운 손길을 받았던 꽃은 풍성하고 조화롭게 수십 년간 황량한 들판을 채워 주었다.

 

“날씨가 좋다 뿅.”

“그렇,네.”

“내일은 여기서 점심 먹을까.”

“그, 것도. 좋지.”

 

 카즈나리는 제 품에 안긴 이를 쓰다듬었다. 성성한 백발이 손끝을 매끄럽게 흘러내렸다. 잘 관리된 모발은 힘없이 부드러워서, 한없이 제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마치 제가 잡을 수 없었던 마사시의 시간처럼.

 

“마사시.”

 

나의 카즈.

 아까처럼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

 

 「내가 바라는 것은 당신의 사랑뿐이오. 나는 신으로서 섬김을 받는 것보다 같은 인간으로 사랑받기를 바라는 것이오.」

 

*

 

 마사시는 후카츠 카즈나리를 사랑했다.

 두꺼운 손으로 신기하리만큼 펼쳐지는 섬세한 손길처럼. 카즈나리에게 아까우리만큼 거대한 애정으로 정교하게 그를 덮었다. 그가 살아온 억겁의 세월 동안 그만한 열기를 느껴본 적이 없어 녹을 것 같았다. 실제로 녹은 것은 그의 금과 납으로 이루어진 화살이었음에도.

 마사시는 카즈나리를 그만의 카즈로서 경애하며, 그 시간에 몰입하여 순애를 바쳤다.

 

 서로만을 바라보던 어느 날 밤. 카즈나리는 마사시를 바라보았고, 마사시는 카즈나리를 느끼고 있었다. 의심과 같이 두른 겹을 내리고, 여린 속살을 맞대어 서로를 품은 시간.

 그때가 되어서야 카즈나리는 깨달았다. 마사시는 처음부터 카즈나리가 내주는 그 모든 것들을 믿었다. 그래서 마사시는 기꺼이, 그의 일평생을 카즈나리에게 사랑을 주느라 다 써버릴 수 있던 것이다.

 카즈나리는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그의 마사시를 사랑했다. 그것은 앞으로도 영원히 적용되는 명제이다. 이제 그의 인생에 있어 더 이상의 미해결 명제는 없을 것이다.

 

*

 

「에로스, 내 아들. 카즈나리. 내 너에게 상을 내려야 될까, 벌을 줘야 할까?」

 

「그 아이가 사라지고 칭송도 잦아들었으니 상을 내릴만하다.」

 

「내 명령을 수행한 것은 칭찬할만하나, 네 자랑스러운 태초의 금화살과 납화살이 더는 보이지 않는구나. 이제는 세상에 사랑과 혐오가 통제 없이 날뛰겠어. 신의 권능을 잃어버렸으니 더 이상 에로스로서의 존재는 무리다.」

 

「따라서 카즈나리. 네게 에로스, 네 신격을 박탈하며 짧고 어리석은 시간을 져야 하는 유한한 삶의 형벌을 선사한다.」

 

 

프쉬케여, 이것을 마시고 불사(不死)를 얻으라. 그러면 에로스도 이 인연을 끊지 못할 것인즉, 이 혼인이 영원하리라.」

 

「그래, 이게 네 선택이구나. 부부는 닮는다더니, 선택마저. 얄미운 것들.

 

 

 카와타 마사시는 세간에서 잊혔다. 그가 세상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은 수십 년 전에 그에 대한 칭송은 아프로디테에게 돌아간 지 오래였다. 혹자는 그를 찾기도 하였으나, 행복한 혼인 생활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금세 관심을 돌렸다.

 후카츠 카즈나리는 신계에서 잊혔다. 그가 에로스였던 사실은 금세 다른 유희와 환락에 묻혔다. 금화살과 납화살이 없어도 자유롭게 사랑과 혐오가 날뛰어 어우러졌다. 그것은 평소 돌아가던 세상의 이치와도 같아 더 이상 그의 필요를 찾는 이들은 없었다.

 

 마침내 아프로디테도 박해의 손길을 거두었다.

 

*

 

 하아. 하얀 입김이 시야를 가렸다. 마치 나무 위에 뿌려진 눈처럼, 입김이 그 언저리를 머물다 사라졌다.

 

“춥다 뿅.”

 

 

“이명헌이. 그러게 내가 장갑 챙기라고 했지. 이리 와, 손 좀 줘봐.”

 

 명헌은 말과 달리 먼저 잡아 오는 손길에 순순히 몸을 맡겼다. 저보다 큰 손바닥 안에 손이 꽉 차게 들어갔다. 상대는 뜨거우리만큼 다정한 온기를 비벼주며 후우, 후우 입으로 바람을 불었다.

 

“좀 녹았나. 이제 장갑 끼자. 너 그럴 거 같아서 내가 진작 가져왔다.”

 

 명헌은 제 손을 덮은 손을 보았다. 제 추위를 신경 쓰고, 찬바람 받은 제 손을 녹여주며, 제 장갑은 챙겼으면서. 정작 본인의 손은 맨손이었다. 주머니에서 꺼내는 장갑도 제 장갑뿐, 본인의 것은 없었다. 제 손에 다가오는 장갑에 명헌은 주먹을 쥐었다.

 

“장갑은 답답하다 뿅.”

“어허. 너 손 잘 트잖아.”

“그러니까 손. 잡아줘 뿅.”

“어, 장갑 끼면 잡아줄게.”

 

 투정하는 아이라도 대하듯, 피하는 손을 능숙하게 잡아 와 살살 손가락 문질렀다. 명헌은 제 손을 부드럽게 눌러오는 두툼한 손가락을 바라보다 확 손을 펼쳐 손가락을 움켜잡았다.

 

“손 내놔. 주장 명령이다 뿅.”

“하!”

 

“신현철, 이명헌! 이러다 지각해! 얼른 가자!”

“야, 쟤네 저러는 거 한두 번이야? 그냥 냅두고 우리끼리 가.”

 

“어, 지금 간다!”

 

 뒤에서 들리는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져준다는 듯이 현철은 명헌의 손을 바투 잡았다. 명헌은 제 손을 덮은 온기를 꽉 붙잡으며 현철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명헌아. 애가 대체 강원도 살면서 왜 이렇게 추위를 잘 타냐.”

“겨울은 얼마 안 살아봐서 그렇다 뿅”

“뭐래. 19년 살아봤으면 익숙해져야지.”

“어휴, 됐다 뿅.”

“뭐가 또.”

 

“날씨가 좋다 뿅.”

“말 돌리긴.”

“내일은 여기서 점심 먹을까.”

“무슨 소리야, 급식은 어쩌고. 내일 맛있겠다며?”

 

 따사로운 햇볕이 그들을 내리쬐었다. 명헌은 고개를 들어 태양 볕을 눈에 담았다. 금빛으로 산산이 흩어지는 빛은 하늘거리는 나비 같았다.

 

“그래도 날씨가 좋아서. 그것도 좋겠네.”

“무슨 소리. 얼어 죽는다 뿅. 급식 먹어야지. 그냥 해본 소리다 뿅.”

“하!”

“내 옆에 앉기 뿅.”

“참나. 언제는 안 그랬다고.”

일부 인용
[네이버 지식백과] 에로스와 프쉬케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2009. 6. 19., 토마스 벌핀치, 이윤기)

[후기]

 안녕하세요 선량한 변방의 농놀인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이 계시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많이 어색해서 보기 힘들었죠? 제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잡은 빡빡이들이자 잡아본 적 없는 유형들이기에 많이 어렵네요.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구상했던 걸 최대한 표현해 보고 싶었지만, 능력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마무리 짓습니다.
철뿅 검색 결과량을 늘리자는 사심 반과 호기심 반에 신청해봤습니다. 앞으로도 구석에서 잘 보고만 있겠습니다. 그냥 절 블락, 차단, 썰지만 말아주세요..안그럼 전 울거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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