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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 오르는 마음으로

악어 | @BasketAlligator

후카츠 카즈나리는 인간과는 결혼하지 못할 운명을 타고났다. 신들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끔찍한 괴물의 반려가 될 것이니 산의 정상에 데려다 놓아 신랑이 거둬가게 하라. 예언자의 전언에 왕과 왕비는 절망했고, 그의 형제들은 불안에 떨면서도 내심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그들끼리 조용히 소곤거렸다.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신탁의 당사자만이 여느 때와 같은 무감한 표정을 지은 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후카츠의 마음은 기대감으로 천천히 부푸는 중이었다. 신들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존재의 반려라니. 신랑 될 이를 수식하는 표현은 그가 바라던 것과 꼭 맞았다.

 

가족들과의 마지막 식사를 끝낸 뒤 그는 부모님의 앞에 절을 올렸고, 형제들과 포옹을 나누었다. 목격한 눈물들은 전부 가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장례식과 비슷할 결혼식은 이른 새벽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목욕 시중을 들어준 하인은 얼른 잠자리에 드시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후카츠는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에 누웠지만, 얼마 가지 못해 일어났다. 이별을 고해야 할 일이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였다. 정원에 가기 위해서는 긴 복도를 한참을 걷고, 계단도 한참을 내려와야 했다. 높은 곳에는 진절머리가 났다. 그는 새로 머물게 될 거처는 낮은 지대에 있기를 바라며 바깥으로 나왔다.

 

속삭임 같은 인사를 전했다. 풀숲을 거니는 고양이에게, 꽃잎을 이불 삼아 덮은 멧밭쥐에게, 줄기의 끄트머리에서 날아오를 준비 중인 무당벌레에게. 남들은 사용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언어를 어떻게 구사하게 됐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본디 인간에게 쏟을 마음을 그 외 대상들에게 쏟느라 그렇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미물들에게는 대체로 연민, 직접 만나보지는 못한 환상 속 존재들에게는 대체로 경외였다. 새벽이 지나고 나면 어떤 감정을 품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잠자리에 다시 누워서도 요동치는 호기심으로 인해 깊이 잠들지는 못했지만, 가마에 올라야 하는 시간이 되었을 때 후카츠는 피곤한 기색 없이 가뿐히 몸을 움직였다. 산으로 가는 길에도 그는 행렬을 따라온 나비와 잠자리와 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는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주변이 조용해져 입을 다물게 되었다. 이따금 강한 바람만이 불어왔다. 머리에 얹어진 흰 베일이 펄럭거리며 피부를 간지럽혔다. 이쯤이면 도착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을 때조차 가마꾼들은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다시금 생각건대, 높은 곳에는 진절머리가 났다. 본능적인 공포심도 꽤 강했다.

 

행렬은 산의 꼭대기에서 멈췄다. 올라오는 길에는 초목이 우거져 있었는데, 정상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가마꾼들도 그에게 인사도 남기지 않고 떠나버렸다. 순식간에 홀로 남은 후카츠는 그 사실 자체는 아무렴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만, 시선이 조금이라도 아래를 향할 때면 느껴지는 섬찟함이 싫어 눈을 감아버렸다. 맞은 편에서 계속해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강풍을 버티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 주위에는 크고 작은 크기의 바위만 있을 뿐,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후카츠는 돌덩어리에는 말을 걸 수 없었다.

 

처음에는 지루함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리석은 감정으로만 치부했던 두려움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내 무릎을 꿇고 있느라 하반신에서 통증도 전해졌다. 차라리 일어나서 조금 걸어볼까 생각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기도 했는데, 높이만 재차 실감하고는 포기했다. 그는 불쾌한 감각들은 실제가 아니라고 자신을 속이는 쪽을 골랐다. 그렇게 하고 나면 다시 남는 것은 무료하다는 느낌. 후카츠에게는 그런 심심함을 다루기 위해 자주 하는 행동이 있었다.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마찰시켰다가 떼어내며 공기를 밀어내는 것. 그렇게 하면 폐에 갇혀 있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는 평소에도 이 짧은 파열음을 문장의 끝에 붙이기를 즐기며 따분함을 이겨내고는 했다.

 

“뿅. 뾰옹. 뿅. 뿅. 뿅뿅. 뾰옹. 뿅.”

 

얼마 가지 않아 후카츠는 입을 완전히 다물었다. 신랑 될 이를 만나서도 삶은 지루할까. 말꼬리에 어떤 음을 장식할지 고민하는 것만이 다가올 미래에도 유일한 재미가 될까.

 

답을 알지 못한 채로 그는 변화하는 공기의 흐름을 느꼈다. 정면에서 닥쳐오던 바람의 방향과 강도와 온도가 모두 바뀌었다. 온화한 바람이 뒤에서부터 그를 살포시 밀어댔다. 꼭,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듯이.

 

“안녕! 오래 기다렸죠! 미안해요!”

 

건네지는 인사가 있었다. 말한 이를 제대로 인식하기도 전에 맑은 목소리부터 와락 쏟아졌다. 더 일찍 오려고 했는데 사소한 문제가 생겼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잘 해결되었으니 신경 쓰지 말아달라, 쓰고 있는 베일이 잘 어울린다, 그나저나 계속 그렇게 무릎을 꿇고 있었던 거냐, 다리 아프겠다 등등. 얼떨떨해진 후카츠가 고개를 틀어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소년이라고 하기에는 키가 크고,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생김새가 앳된 남자였다.

 

“저는 에이지, 아니, 지위가 더 중요하겠구나. 저는 서풍의 신이에요.”

 

그가 몰고 온 바람이 서쪽에서 불어온 것이었나. 판단을 제대로 해내기도 전에 허공으로 몸이 둥실 떠올랐다. 안 그래도 높았던 시야가 더 높아져 버리자 순간적으로 피가 싹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제가 당신을 궁전으로 모셔다드릴게요.”

 

명랑한 음성에 후카츠는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해냈다. 그는 비인간의 반려가 되기 위해 이곳에 와 있었다는 것. 서풍에 몸을 맡긴 채로 후카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

 

 

서풍의 신과 함께 후카츠는 맑은 물이 흐르는 풍경에 도착했다. 그가 홀로 기다림을 인내해야 했던 곳과는 사뭇 다른 색채의 장소였다. 키 큰 수양버들이 강가를 향해 초록을 늘어뜨리고 있었고, 수면 위로는 오리들이 느긋하게 떠다녔다. 궁전은 강을 마주 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왼쪽의 끝과 오른쪽의 끝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크기. 가장 높은 곳도 시선을 조금만 올리면 확인할 수 있었다. 웅장한 규모를 바란 것이 아니었기에 이 정도면 딱 적당했다. 주변 탐색을 마친 후카츠가 인도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사히 후카츠를 이곳에 데려온 일이 굉장히 뿌듯하다는 듯 입꼬리로 시원한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여기예요. 당신이 필요로 하는 일들이 저 문 너머에서 일어날 거예요.”

 

아리송한 말을 남긴 채 서풍의 신은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홀연히 사라졌다. 그가 있던 자리는 발이 디뎌지지 않았음에도 잔디들이 무게감에 짓눌린 흔적을 품고 있었다. 후카츠는 곰곰이 생각했다. 필요를 소망과 비슷하다 여겨도 괜찮다면 바라던 바를 되짚어보면서 기대감을 더욱 크게 부풀리는 일도 마땅한 행동일지. 그는 궁전에 눈길을 주었으나, 발걸음은 문 앞이 아닌 강변으로 먼저 옮겼다.

 

강물 위에서는 커다란 오리 한 마리와 그에 비해 깃털의 색이 옅은 작은 오리 세 마리가 단란한 한때를 보내는 중이었다. 후카츠는 익숙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이곳의 동물들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여전히 얼굴을 한 겹 덮고 있는 얇은 천이 의사소통을 방해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후카츠는 베일은 건들고 싶지 않았다. 그는 대신 조금 전보다 더 큰 소리로 물었다.

 

「궁전 안에 정말로 괴물이 있어?」

 

작은 오리들이 날개를 파닥거렸다. 새끼들이 만들어낸 기척의 의미를 파악한 커다란 오리가 대답했다.

 

「그건 직접 눈으로 봐야 알지 않겠어요?」

 

충분한 답이 되는 메시지였다. 후카츠는 가야 하는 곳이자 가고 싶은 곳으로 향했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은 앞에 서자 손을 대지 않아도 자동으로 열렸다. 그는 미지의 실내로 발을 들였다.

 

궁전의 내부는 외부가 주는 인상에 비해 호화로웠다. 벽면에서부터 천장까지 쭉 이어지는 회화, 기둥에 새겨진 정교한 조각, 가구들을 장식하고 있는 반짝이는 보석 등이 여기를 구경하고 가라는 듯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다. 후카츠는 모든 것에 한 번씩 눈길을 주기만 할 뿐, 오래 관심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가 찾고자 하는 대상은 따로 있었다. 하지만 궁전 안의 모든 문이 열린 뒤에도 후카츠는 누구도 만나지 못했다. 괴물은커녕 인간이나 동물도 보이지 않았다. 복도의 가장 끝에 자리한 침실, 베개가 두 개 놓인 침대마저 없었더라면 후카츠는 궁전 밖으로 나가버렸을지도 몰랐다. 거울 앞에 선 그는 얼굴을 덮은 베일을 벗어 던지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했으나, 끝내 베일을 벗지는 못했다. 그는 한숨과 함께 솔직한 심정을 입 밖으로 냈다.

 

“재미없다, 뿅.”

 

그러자 후카츠의 머리 위로, 혹은 등 뒤, 그것도 아니라면 몸속에서 언어가 번졌다.

 

― 하루 중 가장 재미있는 일은 깊은 밤에 일어나는 법이랍니다.

 

남성인지 여성인지 성인인지 아이인지 당최 가늠할 수 없는 음성. 목소리의 주인이 그를 반려로 맞이하려는 이는 아닌 것 같았다.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후카츠는 굳이 예의를 차리지 않았다.

 

“기다림은 이미 길었어, 뿅.”

― 그분은 당신보다도 더 오래 기다리셨어요. 많은 것을 준비하시면서요.

 

타이르는 어조로 받아들인다면 타이르는 어조였고, 객관적인 사실 전달만을 목적으로 하는 톤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렇게도 들렸다. 존재나마 확인받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하지만 경계 태세를 거두기는 일렀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특정할 수 없었기에 그는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선 채 눈만 굴렸다.

 

“해가 저물고 나면 만날 수 있는 건가, 뿅.”

― 완전한 어둠까지 찾아오면요.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태양은 하늘의 정점에서 타오르는 중이었다. 처음부터 이럴 예정이었다면 행렬은 왜 꼭두새벽부터 있어야 했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후카츠는 곧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때까지 할 게 없잖아, 뿅.”

― 식사부터 하세요. 원하는 것들로 준비되어 있을 거예요.

 

부엌이라면 침실에 오기 전에도 들렀었다. 넓은 테이블은 그때까지만 해도 텅 비어 있었는데, 다시 걸음 해보니 과연 온갖 음식들이 푸짐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의자는 저절로 바깥으로 꺼내졌고, 후카츠가 앉고 나니 다시 안쪽으로 밀어졌다.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허기가 올라왔다. 이른 시간부터 여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으니 배가 고픈 것도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그는 식기에 손을 뻗으려다가, 멈칫했다.

 

― 먹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잖아요? 그분도 이해하실 거예요.

 

목소리가 다 알고 있다는 듯 굴었다. 웃음기까지 약하게 섞여 있던 것이 후카츠는 거슬렸으나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직접 베일을 벗었다.

 

풍족한 식사를 끝낸 뒤에도 바깥은 환한 낮이었다. 부엌에서 나와 정처 없이 걷다 보니 도착지는 다시 침실 앞. 당장에 하고 싶은 것을 떠올린 후카츠가 입을 열었다.

 

“씻고 싶어, 뿅.”

 

침실에 간이 욕실도 붙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내며 한 말이었는데, 이번에는 웃는 소리가 아주 대놓고 전해졌다.

 

― 당신은 씻지 않아도 깨끗해요.

 

왕궁에서 산 정상으로. 산 정상에서 이곳으로. 거쳐온 길이 길었던 만큼 보이지는 않더라도 몸에 달라붙어 있는 흙먼지들이 분명 있을 텐데, 씻지 않아도 깨끗하다니. 비단 물리적인 청결만을 뜻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후카츠는 반박의 기회도 질문의 기회도 얻지 못했다.

 

― 밤이 되기를 기다리기가 힘들다면 지금 잠들어도 좋아요.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다리가 움직였다. 비틀비틀 걸어가 침대 위로 쓰러지자 이불이 몸을 덮고, 쥐고 있던 베일은 손아귀에서 스르르 빠져나와 다시 얼굴을 가려주었다. 후카츠는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밤에는 오히려 잠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 마지막으로 들은 내용이었다.

 

 

*

 

 

분명 눈을 떴는데도 눈을 감았을 때와 똑같은 암흑 속에서 후카츠는 밤이 깊었음을 깨달았다. 이토록 완전한 어둠에 내던져진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시각 외의 감각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다. 몸을 감싼 이불과 얼굴을 덮은 베일의 감촉이 느껴졌다. 이 정도면 잠들었던 동안 다른 곳으로 옮겨지지는 않았다고, 시간만 흘렀을 뿐 다른 환경은 그대로라고 여겨도 될 것 같았다. 물론 믿음을 가져보아도 섣불리 움직이기란 힘들었다. 그는 상체만 겨우 일으킨 채 의미 없는 눈 깜빡임을 지속했다. 한 지점을 뚫어지게 바라봐 봤자 형태, 색채, 깊이감 그 무엇도 인식되지 않아 피로가 쌓였다.

 

무슨 말이라도 또 먼저 해보아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목소리가 들렸다. 낮 동안 들었던 것과는 다른 미성에 후카츠는 조금 놀랐다.

 

“깊이 자는 것 같더라.”

 

싱거운 첫인사. 그러나 가슴은 거세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도 인사를 건네고 싶었는데, 실제로는 ‘불’이라는 단어만 작게 중얼거린 게 고작이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은 비교적 분명했지만, 그래도 빛은 있어야 했으니. 아주 작은 불이라도 켜고 싶음이 당연했다. 볼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고개를 돌려가며 초조해하고 있자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남편이 경고했다.

 

“보면 안 돼.”

 

그의 모습을 보지 않는 것. 이것만이 지켜야 할 유일한 일이라고 했다. 그를 보여주는 것 이외에 원하는 무엇이든 들어줄 것이며, 금기가 깨지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오래도록 함께 행복하리라는 달콤한 속삭임도 뒤따랐다.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그와 같은, 어쩌면 또래일 수도 있을 듯한 인간과 함께하는 느낌이었다. 한마디씩 들을 때마다 배 안쪽에서는 간질거림이 심해졌다. 전에는 경험한 적 없는 감각에 신경을 쏟느라 길게 생각하지 못하고 끄덕여버렸다. 이 알겠다는 의미의 고갯짓이 제대로 전해졌는지조차 파악할 수가 없어 답답했다. 어떤 표정인지 또한 못 견디게 궁금했는데, 남편은 다른 것을 먼저 알고 싶어 했다.

 

“너를 뭐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

 

물음에 익숙한 이름을 혀끝에 올려두었다가 떨리는 숨과 함께 허공으로 흘려보냈다. 사방이 깜깜한 어둠이라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춘 곳이 어디인지 가늠도 할 수 없었다.

 

“카즈나리…….”

 

사라지게 내버려 둔 것은 가족들과 공유한 이름이었다. 이제는 떠나온 이름, 돌아가질 않을 이름이므로.

 

“안녕, 카즈나리. 나는 마사시. 하지만 부르지 않아도 돼. 밤이 되면 항상 찾아올 테니.”

 

목소리는 처음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전해졌다. 어쩌면 목소리만 가까워진 것이 아닌 것 같다고도 느낀 순간에 그가 베일을 건드렸다. 사락, 걷어진 천 역시 가족들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추적할 수 없는 곳으로 사라졌다.

 

“나의 반려가 되어줘서 고마워.”

 

그가 이곳에 도달한 이유가 확정됨과 거의 동시에 입술에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카즈나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가만히 있었다. 다물린 입술 틈을 쓰다듬는 것 역시 따뜻했지만, 이는 조금 더 축축했다. 입술을 벌리라는 뜻임을 카즈나리는 뒤늦게 배웠다. 낯선, 그러나 기분 좋은 행위였다. 음식을 먹을 때만 쓰던 기관이 이렇게도 그에게 충족감을 가르쳤다. 배 안쪽에서는 자꾸 무언가가 끓어오르며 온몸을 움찔거리게 했다.

 

카즈나리가 가진 입술과 같은 것을 마사시도 갖고 있었고, 카즈나리가 가진 손과 같은 것을 마사시도 갖고 있었다. 공통점 다음에는 차이점도 발견할 시간이었다. 카즈나리의 손바닥에 차례로 매끈한 피부, 단단한 근육과 뼈대 그리고…… 깃털이 닿았다. 그의 남편은 등에 거대한 날개 한 쌍을 달고 있는 것 같았다. 카즈나리는 그에게는 없는 것을 오랫동안 쓰다듬다가, 기댈 곳을 찾았다. 마사시가 날개로 카즈나리를 감싸 안았다. 꼭 그에게로 흡수시키듯. 닿고 나니 놀라우리만치 안락하고 따뜻했다. 맞물린 육체의 곡선이 운명의 형태를 그렸다.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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