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EROS
무척 눈이 맑다.
이명헌에 대한 내 첫 감상이었다.
그 눈을 나는 입학하고 자그마치 한 달여가 지난 후에야 처음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같은 신입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섞어본 일이 없었다.
28m. 코트 끝에서 끝.
그 거리만큼을 두고 우리는 산왕 농구부에 속해있었다.
이유를 따져보자면 명확했다.
선배가 하나 있었다.
한 학년 위로 오래 전부터 지역에서 실력자로 유명한 남자였다. 심지어 동네 유지에 집안 대대로 농구광으로 영향력도 커서 우리가 이 나라에서 운동을 계속한다면 언제든 만나게 될 사람이었다. 명성만큼이나 실력이 좋고 그만큼 자존심이 강해서 눈에 거슬리는 사람은 미묘하게 괴롭힐 정도로 성격도 나빴다.
산왕 농구부를 지배하는 신이나 다름없는 사람.
그런 그의 앞에 차기 에이스로 불리는 이명헌이 나타났으니 얼마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까.
에이스.
최강 산왕의 이름 아래서도 더욱 실력이 빛나는 자.
하늘 아래 두 에이스는 없다.
신입생부터 선배들까지 명헌을 칭찬하기 시작하자 이 남자의 자존심에 얼마나 큰 스크래치가 갔을 지는 명확했다.
문제는 그가 나와 친인척사이였다는데 있었다.
“뿅키치 자식 재수 없지 않냐?”
그가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애매한 위치에 설 수 밖에 없었다. 코트를 돌아보자 명헌은 자유 연습시간에도 친구들의 드리블과 슛 폼을 봐주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못마땅한 지 선배는 같은 학년인 나에게 명헌의 평판과 실력에 대해 물어왔다.
“뭐….”
반도 다르고 기숙사 생활을 하는 명헌과 달리 나는 통학생이었다. 학기 초반인지라 농구부 연습 때도 파트너로 만난 적이 없다. 얼굴을 제대로 들어다 본 적이 없는 소문의 신입생 에이스. 실력이 좋다는 것 뿐. 덧붙일 말이 없었다.
대답이 없자 선배가 말했다.
“가서 저 새끼 손 좀 봐주고 와라.”
“… 손을 봐주라니, 형.”
“뭘 정색해. 누가 때리래? 같은 학년이잖아. 재미로 약점을 알아오든가 아니면 좀 혼내서 나대지 못하게 해보라고.”
질투 많은 신이 속삭였다
‘궁금하지 않냐? 신입생 주제에 에이스인 나에 견줄 정도라는 소문. 동의하는 저 오만방자한 표정을 보라고.’
그가 가리키는 곳에 명헌의 등이 보였다. 실제 표정이야 어떨지 모르겠으나 언제나 같은 자세였다. 곧게 뻗은 등과 뒷짐을 쥔 자세. 똑같이 빡빡 깎은 머리.
훗날 그 때를 돌이키면 나는 어떠했더라.
지금이야 키가 훌쩍 큰 덕에 모든 포지션을 섭렵할 수 있었지만 당시엔 키가 크지도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잠을 설치기도 했다. 집안사람 모두가 한 덩치 하는 마당에 나 홀로 작아서 좋아하는 농구를 오래 할 수 없게 된다면…
자존심이 상해있던 쪽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운동을 계속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위로해주었던 형들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다.
그래서 정말 이명헌을 어찌해보겠단 뜻이 아니라 적어도 너무 눈에 띄지 말라고 말 정도는 건넬 작정이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라도 녀석이 꽤 잘나 보이기는 했다. 도무지 동년배들 같지가 않다고.
‘조심해. 칭송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만큼 음해하려는 자들도 생겨나. 만약 약점이라도 들킨다면….’
선배의 목소리가 귓가에 머물렀다.
‘재미로 약점을 알아오든가.’
명헌에게 약점이 있다면 나부터 알고 싶었다. 나쁜 뜻이 아니라 앞으로 3년은 함께 뛰어야 할 테니 서로를 보완하자는 의미에서. 이도 저도 아니라면 서로 편해질 수 있도록 적어도 형에게는 져주라고.
그리 말해볼 생각이었다.
“야야, 가보자. 2학년 주전 형이랑 명헌이랑 일대일로 붙는대.”
같은 반인 낙수를 통해 시합 제안을 하자 명헌은 겁도 없이 승낙을 해버렸다. 말을 전해놓고도 나는 이게 정말 맞는 상황인가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때리지는 않겠다잖아. 차라리 원온원이 건전하지.’
왠지 걸음이 무거워 느릿느릿 농구장에 도착했을 때 친척 형이 마침 잘 왔다면 내게 심판을 보라고 말했다. 쓸데없이 같은 학년이니 봐주지 말라는 말을 한다. 교묘한 말에 모두가 우리의 친인척 관계보다 같은 ‘1학년’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호루라기를 입에 불면서 코트로 들어서자 선배가 작게 속삭였다.
“심판 설렁설렁 보라고. 무슨 말인지 알겠어?”
“…….”
알았대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얕은 수를 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도 이렇게까지 해서 이기고만 싶을까?
자존심을 걸고 두 남자는 신호를 따라 공을 향해 점프했다.
실로 시합은 현 에이스와 차기 에이스의 자존심 대결이라 할 만 했다. 명헌은 다른 지역에서 스카우트를 해왔을 정도로 재빨랐고 이미 완성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키도 점차 더 크겠지.’
그러니 이미 전국제패를 한 번 이뤄낸 선배와도 비등하게 싸워내면서 공을 빼앗아 첫 골을 득점했겠지.
관중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코트 안의 두 남자의 시합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나는 시합 내내 불안한 눈빛으로 두 사람의 움직임을 좇았다. 농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에이스의 자리를 마냥 얻을 수 없음을 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자리에서 내가 직접 뛰는 것도 아닌데 왜 이명헌 너를 시험하는 자리에 서있어야 하지.
나를 위한, 내 성장을 위한 자리도 아닌 자리에서 무엇을 시험 당하면서.
너를 계속 바라보아야 할까.
버저 소리가 코트에 울려 퍼졌다.
“... 시합 끝! 15:14. OOO 승리.”
경기는 마지막 3점 슛과 함께 선배의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몇 초 늦게 경기 결과를 외치자 여기저기서 탄식과 또한 안도 혹은 실망에 대한 반응들이 터져 나왔다.
으스대며 코트를 나오는 선배의 뒤로 숨도 헐떡이지 않고 녀석이 망부석처럼 서있었다. 외면하며 ‘결국 1학년은 1학년이었네.’하는 심정으로 돌아설 때였다.
“심판님.”
명헌이 처음으로 나를 불렀다. 그 때야 처음으로 그 애와 마주할 수 있었다. 망설임 없이 나를 향한 곧은 눈빛. 확신에 찬 시선.
무척 눈이 맑다.
그것이 이명헌에 대한 나의 첫 감상이었다.
“선배 금 밟았다요뿅.”
“뭐? 안 밟았어!”
흩어져가던 부원들의 시선이 다시 코트 안으로 모여들었다.
‘뿅은 뭐지. 그래서 뿅키치였나. 그보다 무슨 소리야. 금을 밟았다니.’
관중 쪽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맞아… OO선배 선 밟았어.”
“나도 봤어….”
“뭐? 누구야!”
“그럼 동점이잖아.”
선배가 소리를 치며 나와서 당당히 말하라고 했으나 누구도 앞으로 걸어 나오지 않았다. 분명 1학년 쪽이었으나 심상찮은 분위기에 서로서로 의리를 지켜주는 듯 했다.
결과에 대해 의견이 터진 쪽은 3학년 쪽이었다.
“그러면 OO이가 이긴 게 아니네.”
“무슨 소리에요. 내가 이겼다고요!”
“동점이면 연장전 해야겠군.”
그 말이 선배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신현철!”
인파가 갈라지며 모두가 내게 시선을 돌렸고 공간이 절로 파도치듯 나를 앞으로 밀어냈다. 원치 않았음에도 쓸려 나와 나는 모두의 시험대 위에 서야했다.
“신현철 네가 심판이잖아. 너도 봤어?”
그가 흥분하자 선배들이 달려와 나를 둘러쌌다. 분명 보호해주려는 몸짓인데도 165cm인 내 위로 최소 180cm를 넘는 선배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어둡다.
어둠 속에 오직 내 손에 진실을 밝힐 등이 들려있었다.
진실.
더는 보이지 않는 너의 맑은 눈,
형체 없는 용기의 증언들.
그럼에도 어둠 속에 선명한 선배의 고함 소리.
진실은 무엇에 달렸나. 정작 내가 네 편을 들면 1학년들끼리 결탁한다고 하지를 않겠나.
“신현철!”
“안 밟았어요.”
나는 그저 분란을 잠재우고 싶었다. 그저 농구가 하고 싶었던 단신이었던 나의 선택. 비겁의 발언으로 상황을 덮었다.
“선배 금 안 밟았어요.”
그제야 선배들이 물러섰고 그 순간에 너는 네 눈을 보더라.
맑은 눈.
승리를 즐거워하는 선배의 뒤에서 그 눈이 내게 어떤 실망도 내비치지 않고 그저 돌아섰을 때,
나는 오직 네 등을 보았고 말 없는 그 등에서
나는 내 행동의 무게를 손 안 가득 받아 들여야 했다.
“현철아!”
누군가 내게 농구공을 던졌을 때 차마 공을 잡지 못했다. 몸에 맞지 않게 크기만 했던 손을 바라보며 이젠 내가 망부석이 되어 내 비겁의 결과를 받아들여야했다.
악의없이 분란을 잠재우기 위해 쏘았던 화살이 비수가 되어 나에게 다시 꽂혔다.
맑은 눈. 진실에 의해 영혼을 관통 당한 것은 나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나는 코트에 서지 못했다.
‘무릎이 아파.’
갑작스러운 몸살로 학교까지 결석하며 그 날을 생각했다.
네가 내게 등을 보인 날.
언제나 보아왔던 등이다. 그래서 똑같아야할 등이 왜 계속 눈을 감아도 눈꺼풀에 들러붙어 나를 괴롭힐까.
후회와 후회의 연속의 밤이었다.
우리는 어째서 지금껏 한 마디도 나누지 못했을까.
그리하여 서로의 등을 보며 스쳐갈 뿐이었는데 왜 그 등이 이제와 내게 시련을 주는가.
처음 본 눈이 무척 맑았다.
그 날 밤부터 심히 몸이 아팠다. 죄책감 때문에.
죄책감.
스포츠 정신에 어긋난 나의 비열함.
‘체구가 작으면 어때, 그렇다고 농구를 못해?’
스스로에게 매일을 세뇌하듯 위로하였던 나의 결의를 스스로 얼룩지게 만들어서.
‘나의 싸움, 나의 농구도 아니었는데.’
이 생각으로 다른 누군가의 코트를 더럽힌 죄. 다른 사람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당당하지 못했던 나의 비굴함과 일말의 너절한 행동이 나에게 돌아와 상처를 주었음으로.
‘무릎이 아프네.’
맑은 눈을 생각하며 나는 심히 일주일을 앓았다.
“에그머니나.”
일주일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때 어머니는 놀라 쟁반을 떨어뜨리셨다. 당황한 쪽은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일주일 만에 순식간에 키가 커져있었다.
마치 프시케를 본 에로스가 제 날개를 펴낸 것처럼.
어머니는 내 키를 가늠해보기라도 하듯이 손을 들어 올리셨다.
“그랴. 가족력이 있는데 네가 나를 따라 키가 안 클 리가 없었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손을 내려 쓰다듬어주셨는데 이제는 손이 머리에 닿지를 않는다.
머쓱한 동시에 마냥 기쁘지 않았다. 몇 년을 그렇게 키가 크기를 기다려왔는데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이런 오염된 정신으로 농구를 계속해도 될까.
이딴 마음으로는 농구는커녕 무엇도 할 수 없을지 모르는데.
작아진 유니폼을 손에 쥔 채로 생각했다.
나는 네 눈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있을까.
그런데....
어째 왜 너를 생각하면 심장이 따끔거릴까.
“맙소사. 네가 신현철이라고?”
현철이 코트에 등장하자 모두가 세상에 이런 일이 있냐며 입을 떡 벌리고 감탄했다. 근육이 자리 잡을 시간은 없었으니 오히려 삐쩍 마른 듯도 했으나 눈높이가 달라져 있었다. 어색하게 웃는 그에게 축하한다며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넨 사람도 선배인 친척 형이었다.
코트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겨우 일주일이었는데 이명헌을 떠받들던 무리는 잠잠해졌고 승리를 거며 쥔 선배의 입놀림은 계속되고 있었다.
“너무 자라나는 새싹을 밟아줬나?”
그렇게 말하는 자신도 완전한 승리가 아님은 알고 있을 테지. 찝찝함이 섞였으나 그래도 우쭐대지 않을 수 없었다. 남들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에이스에게 대적한 한낱 인간을 응징한 사건이었음으로.
놀라운 것은 이명헌 쪽이었다. 표정이라곤 없어서 이 정도 사건이야 신경도 안 쓸 줄 알았다. 그래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코트에 나와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사건 이후 2주간 코트 출입을 금지 당했다고 했다. 기초 체력 훈련은 참석하고 있으나 다들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했다.
기량 변화를 겪었을지 모른다는 추측뿐이었다.
“나와의 시합이 그리도 자존심 상했나? 설마 재기 못하진 않겠지?”
시답잖은 선배의 말은 무시했다. 명확한 이유가 있지 않나.
나의 편파판정.
현철은 굳은 채로 멈춰서 있었다.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몸이 제 맘대로 움직이질 않을 정도였다. 갑자기 커진 몸을 어떻게 다루어야할지 혼란스러운데 통제할 정신력마저 흐려진다.
내 거짓말 때문에 그 애가 농구를 못하게 되었다니. 오히려 자격을 박탈당해야할 쪽은 나인데 어째서 에이스로 칭송받던 그 애에게서 모두가 등을 돌려야 했을까.
“낙수야.”
연습을 마치고 돌아서는 낙수를 불러 세웠다. 명헌과 같은 반으로 평소 함께 기숙사로 돌아가는 친구였다. 빤히 쳐다보는 얼굴에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혹시 이명헌 어디 아프냐?”
딱히 소득은 없었다. 오히려 죄책감만 더 깊어질 뿐.
“왜 물어? 너 명헌이한테 잘못 한 일 있어? 없으면 미안할 일도 걱정할 일도 없을 텐데.”
“아니, 그냥. 돌아왔는데 없으니까… 같은 학년이니 소식이라도 알고 싶어서.”
“어쩔 수 없지. 2학년 선배들이 스포츠맨십도 없는 놈을 그냥 넘어갈 순 없다잖아.”
꿀이라도 먹은 듯 더 말이 없자 낙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돌아섰다. 복도가 끝나 다른 방향으로 돌때까지 현철은 한참을 복도에 서있었다. 소문대로 훌쩍 큰 키로 마른 얼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대역죄라도 지은 듯한 표정으로.
낙수는 현철을 불러 좀 더 이야기를 해줄까 하다 입을 다물었다. 현철과 선배들과의 사이를 모르지 않았다. 게다가 딱히 걱정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그 녀석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으니까.”
“뭐가 뿅?”
기숙사 문을 열자 명헌이 무릎이 늘어난 바지를 입고 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워있었다. 볼에는 감자칩 부스러기가 잔뜩 묻어 있었고 얼굴엔 걱정근심이라고 하나 없었다. 오히려 며칠 사이 살이 붙어 볼이 통통했다.
무척 개운해보이는 얼굴.
바닥을 구르면서 혼자 비행기 자세로 날아오를 자세를 취하는데 낙수는 현철에게 말을 해주었어야하나 다시 한 번 고민해보았다. 전혀 걱정할 일 없다고 말이다.
“이명헌.”
“뿅.”
낙수의 호명에 명헌은 어질러 놓을 때는 언제고 착착 쓰레기를 분리해 깔끔히 청소를 했다. 그러곤 홀로 스쿼트를 한다. 300개를 넘어가며 호흡소리가 조금 새어나오자 낙수가 수건을 던졌다.
“정신 사나워, 임마.”
“뿅.”
당장 저렇게 운동이 하고 싶은 애가 앞으로 일주일은 더 코트 금지라니. 낙수는 없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당장이라도 가서 선배나 감독님에게 빌어보자는 소리는 죽어도 나오지 않았다.
‘명헌이가 뭘 잘못했는데.’
사실이 어떻게 잘못이 될 수 있지. 어떻게 2학년 선배들이 주축이 되어서 시합에 이기려고 거짓말한 애로 만들 수 있냐는 말이다.
그래도 농구는 해야 하니까 편파판정을 받아들이라고? 어차피 증거도 없으니까? 애초에 편파판정을 한 쪽은 누구인데.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은 신현철의 잘못인가. 그 애는 정말 못 봤을 수 있잖아. 그애도 나름의 사정이 잇으니까.
혹여 명헌이가 원치 않았는데도 떠들어대며 떠받들어주었던 사람들의 잘못일까? 겨우 17살이라서 칭찬에 즐거웠던 이명헌과 친구들의 잘못이라면…
그건 너무 하지 않느냔 말이다. 그저 농구가 하고 싶을 뿐인데.
“짜증나.”
모두의 마음이 일의전심에 멀어져있었다.
똑똑-
혼란한 너머로 누군가 기숙사 문을 두드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명헌과 낙수는 귀찮다며 누가 나갈까 가위바위보를 했고 다섯 판째에서 아쉽게 진 명헌이 몸을 말아 공처럼 문으로 굴러갔다.
“한참 전에 갔겠다.”
“용건이 있는 자라면 기다려야 하는 법, 누구세용.”
낙수의 말대로 문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바닥으로 무언가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문고리에 걸려있었는지 비닐봉지에서 음료수며 과자 같은 것들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낙수도 신기한 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도대체 누구지?
“우렁각시.”
“그건 집 안에 숨어 살잖아.”
“그럼 산타?”
“선배들이 독 타서 보냈을지 몰라. 여기 쪽지.”
비닐봉지에 대충 종이가 묶여있었다. 글씨는 단정하고 정갈했다.
[ 이명헌. 네 잘못 아니야. ]
"흠?"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명헌의 기숙사로 밤마다 쪽지가 날아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