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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디넓은 신방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으나 주변으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명헌이 와서 가장 놀랐던 것은 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황궁에서 수족처럼 일하는 이들이 가진 버릇이었으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가는 데도 소리 하나가 들리지 않아 명헌은 신기하면서도 쓸쓸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더라도 자신과 말벗할 이 하나 없는 것은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인가 싶어서. 먼 곳에서 길게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밤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그것은 궐 내 누구도 사사로이 다닐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처마 아래 달린 풍경이 거세게 흔들렸다.
미동도 없이 앉아 있던 명헌이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사방에 있는 불이 일제히 꺼졌다.
혼례를 위해 침상에 드리웠던 붉은 휘장이 명헌의 앞으로 나부끼던 것도 잠시, 은은하게 밝혀둔 화촉에 의지해 주변을 가늠하던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그야말로 암흑이었다.
“오래 기다렸는가.”
“…….”
어둠 안에서도 자신에게 다가온 그림자를 명헌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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