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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신 현철과 점쟁이 명헌」의 관능성 연구¹
A Study on Voluptuousness in 「The God of Erotic Love and The Psychic」

나나 | @norangmeansX

ABSTRACT 

 

 This paper seeks to minimize any fucking doubts about the appropriacy between ‘The Myth of Eros and Psyche’ and ‘HyeoncheolMyeongheon(CheolPpyong).’ To find various similarities between the Greek mythology and a yaoi couple, CheolPpyong from the movie <The First Slam Dunk, 2023>, I focused on Hyeoncheol's unwanted rapid mental and physical growth. Indeed, Hyeoncheol corresponds to Eros. He happened to step in Myeongheon’s orbit and suddenly got taller, bigger, and stronger to be Myeongheon’s better half. This transition is caused by Myeongheon, who made Hyeoncheol to jump into his own world, which is similar to Eros's falling in love with Psyche and becoming fully grown adult body. Despite of his gender, Myeongheon could be equivalent to Psyche, due to his limitless curiosity. Psyche comes from the Greek psykhe, which means the soul: an invisible animating entity that occupies the physical body. The soul creates a phenomenon of transfiguring a boy into a man. This paper finally explores the idea of Voluptas, the goddess of sensual pleasures and delight in the Greek Myth, in relation to the fruition of CheolPpyong's sexual love. It blew my mind. That suits CheolPpyong impeccably. Because I said so. No kidding. The most striking finding is that this thing I just wrote is nothing but a shitshow. Based on these findings, CheolPpyong-ers would find anything but the sleaze-ridden analysis from this paper, in which CheolPpyong eventually deified as the true successors of Hedonism.

      Ⅰ. 서론

 

      1. 들어가며

 

다양한 담론 생산은 연성러로서 응당 해야 하는 일이다. 공놀이로 엿볼 수 있는 기깔나는 특성들을 발판삼아 그들의 신체에 확장된 서사를 이어 붙여본다. 물론 이노우에 다케히코처럼 말하기보다는 보여주길 택하는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을 무작정 교미시키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인간이 철뿅에 대해 하나 제대로 말해주기는 했다. 입학 당시에는 현철이 명헌의 애착짱돌이었다는 것을. 이 애착짱돌을 땅에 심어 물을 줬더니 무럭무럭 자랐다. 무럭무럭 자란 현철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명헌이 오리의 황금알을 훔쳐 돌아오는데… 아, 이건 다른 모티브인가. 그렇다면 명헌이 현철의 성장을 어떻게 목도하였는지 본고에서 알아보고자 한다.

 

 

      2. 선행연구

 

관능은 오래도록 신화 생산의 주범이었다. 생각해보라. 미술관에 고이 보관―혹은 장물로 전시―된 거대한 조각상이 어떻게 그 세월을 버텨낼 수 있었는지. 그 예술작품은 스스로를 부단히도 증명했다. 관람자로 하여금 반드시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도록 계산된 것이 첫 번째다. 거대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숭고미가 두 번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앞선 두 특징 때문에 그러한 조각상의 대가리가 아주 크다는 점이다. 크레인을 올려 정면에서 찍은 신들은 모두 대가리가 컸다. 대가리가 커서 기실 비율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들통났다. 그렇게 그 어떤 구전과 그림보다 완벽하게 예술작품을 담아낸 사진에 의해 신화는 사망했다. 순응과 체화의 노래가 필히 불응과 전복을 생산하듯, 신화가 본연의 아우라를 잃었음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지표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화가 몸을 갈아입는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대가리가 아주 크기 때문일 것이다. 반골 기질은 신화에게도 있었던 모양인지 국가의 건설과 파시즘의 신봉, 냉전의 붕괴와 신자유주의를 경유하여 스포츠라는 무용성 안에 착지했다. 그 착지는 너무나도 매끄러워서 10점 만점 채점제 하에서 10점 만점을 받았다. 나디아 코마네치가 몬트리올 올림픽 결선에서 선보였던,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바로 그 이단평행봉 수행처럼 말이다.

스포츠선수들은 신화 속 영웅들의 지위를 매끄럽게 강탈했다. 그들은 그저 더 높이, 더 빠르게, 더 강인하게 움직여서 달성했다. 현대에 이르러 나와 너를 가르고 동그란 물체를 마찬가지로 동그란 곳에 밀어 넣는 것보다 무용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한 무용성의 꿋꿋한 수행으로부터 스포츠선수들은 가장 현대적인 오브제가 되어, 자신이 그리는 이상에 다가가려 할수록 덧입혀지는 신화 속에 내동댕이쳐진다. 그렇게 그들은 고대 지중해 국가의 신처럼 절대적인 신체를 지닌 채로 오직 극치로의 관능을 생산해내게 된다.

관능의 신화는 결국 사랑을 잉태한다. 우리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에로스와 프시케 신화는 사랑 그 본질을 아주 잔인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의심이다. 내가 식별하는 것이 너인지 너가 아닌 다른 무엇인지. 혹은 도발이다. 내가 식별하고자 하는 너의 미래가 도래할 것인지 아닌지. 뼈를 부수는 듯한 통증을 견디며 현철은 이러한 변화가 달가웠을 것이다. 세계가 드디어 저에게 답을 준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가 명헌임을 알아보았던 날에는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제 만족하냐, 명헌아.

명헌은 자신이 원하던 극치의 실현에 기꺼이 감응했을 것이다. 그리고 상징계 속 자신을 벗어버리고 실재적 숨결을 뱉었을 것이다. 뾰오오옹, 하고.

그리스어로 ‘프시케’는 숨결을 뜻한다. 이는 영혼 또는 마음을 상징하게 되며 나비로까지 확장된다. 유사한 뿌리의 언어들이 사랑의 감정을 뱃속에 나비가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그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관념idea을 마음에 품는다는 것은 한때 직관적 향락이었던 주관적 감각의 활동이 몸에 녹아드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플라톤이 말하는 ‘에로스’이다. 영혼은 그러한 관념을 품음으로써 자신의 창조적 기능을 누릴 수 있게 된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향연The Symposium』에서 에로스의 최종적 개념을 이상적 완전성ideal perfection으로 향해가는 충동이라고 밝혀주고 있다.²

 

 

 

 

      Ⅱ. 본론

 

      1. 사랑신 현철

 

현철은 명헌을 처음 만난 날, 어깻죽지가 아팠다고 느꼈다. 단순한 느낌만이 아니었던지 일기장에도 썼다. 엄지 아래가 유독 두툼한 손이었다. 체격에 비해 크고 두툼한 손은 현철이 작고 왜소하던 시절부터 남다른 악력을 선사해주었다. 쥐어야 할 것은 쥘 수 있도록. 현철은 펜을 잡고서 굵은 손가락을 섬세하게 움직였다. 소근육 발달도 필요한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답지 않게 글씨를 잘 쓴다뿅.

명헌은 입부신청서를 작성하는 현철의 뒤에 가만 서 있었다. 현철은 벽에 흰 종이를 댄 채, 정자로 출신중학교를 써넣다 말고 고개를 돌려 명헌을 힐끔 보았다. 다 썼다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명헌이 팔을 뻗어 현철의 손에서 펜을 빼내었다. 뾰옹…! 그 작고 일상적인 스침에도 명헌은 현철이 남다름을 느꼈다. 따뜻하지만 메마르지 않아서일까. 연습게임이 끝나면 현철은 참패했음에도 먼저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명헌은 맞잡은 현철의 손이 두껍다고 느꼈다. 단순한 느낌만은 아니었던지 꿈에서도 보았다. 꿈속에서 제 입술을 쓸어주는 현철의 손이 여전히 따뜻하고 메마르지 않아서, 명헌은 사정하고 말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일어나니 현철이 뻗은 손에 입술에 닿아 있었다. 현철은 꿈자리가 사납기라도 한듯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명헌은 현철의 엄지 아래 그 두덩에 괜히 입술을 맞대어보았다.

그날 이후부터였다. 현철은 밤마다 끙끙 앓았고 명헌은 밤귀가 밝았다.

현철. 악몽을 꿨뿅?

나란히 구보를 하다 말고 명헌이 물었다. 현철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단순한 근육통이라고 했다. 고강도의 훈련에 익숙해진 뒤에도 현철은 계속해서 앓았다. 새벽마다 명헌은 현철의 신음에 밤잠을 설쳤다. 진통제와 온찜질로도 다스려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현철은 수업 내내 꾸벅꾸벅 졸았다. 명헌은 피곤한 눈을 문지르며 현철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걱정마라뿅. 내가 해결뿅.

명헌은 교실에서 인주로 부적을 써서 현철에게 주었다. 현철은 뭐 이런 걸 주느냐고 하면서도 고이 접어 품에 넣었다. 부적으로 통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현철과 다르게 명헌은 심각해졌다. 현철의 끙끙거림은 오히려 더 극심해졌고 명헌 외에 다른 아이들도 그 소리에 깨어나곤 했다. 그럴 때면 현철은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얼른 자라고 이불을 도닥였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 휴게실의 소파에서 따로 잠을 청했다.

뭐가 되기는 될 건가뿅.

현철은 저를 쫓아온 명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글쎄, 필요한 만큼 자랄지는 모르겠네.

명헌은 무릎을 주무르는 현철의 옆에 앉았다. 덜덜 떠느라 등도 아프다고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따라왔다. 명헌은 현철의 상의를 걷어 올려 어깻죽지에 가만 손을 얹었다. 그리고 코를 가져다대어 킁, 냄새를 맡았다.

뭐하냐.

현철이 몸을 틀어 명헌을 떨쳐냈다.

도깨비인지 확인해봤뿅.

명헌의 말에 현철은 작게 웃었다. 어둑한 휴게실이 일순간 밝아진 것처럼 현철이 아주 또렷하게 보인다고, 명헌은 생각했다.

 

현철은 주말이면 집으로 갔다. 성장통으로 큰 병원에 들렀다가 진통제를 한 아름 들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돌아온 현철은 옆구리를 벅벅 긁으며 명헌의 옆을 기웃거렸다. 용건이 있는 듯했으나 말을 먼저 꺼내진 않았다. 집은 어땠냐고 묻는 명헌에게 현철은 이렇게 답했다.

아니, 그냥 좀… 일이 있었어.

그리고 곧바로 덧붙였다.

명헌아. 너 뭐… 굿 같은 것도 하냐?

명헌은 현철이 유독 몸을 긁는다고 생각했다. 팔뚝을 붙들고 티셔츠를 들어올렸다. 어찌나 긁었는지 새빨간 살갗이 뜨끈했다. 명헌은 그곳에 코를 대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도깨비 아니라니까 그러네.

열감은 코의 점막을 타고 들어왔다. 명헌은 커다란 진동과 무수한 잔해, 그리고 그것을 보았다. 명헌이 제 팔뚝을 강하게 잡아오는데도 현철은 뿌리치는 대신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아… 악귀뿅!

다음 주말, 명헌은 현철과 같이 그의 집으로 갔다. 비포장도로를 내려가는 마을버스가 유독 덜컹거려서 현철의 몸에 명헌의 몸이 닿았다가 떨어지길 반복했다. 현철은 유리창과 이음새가 부딪히며 내는 시끄러운 소음에도 상황 설명을 조곤조곤 이어나갔다.

공장에서 쥐와 새가 떼죽음을 당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악몽을 꿔. 그래서 그만두는 사람도 나온대.

약간 높은 듯한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선명하게 들린다고, 명헌은 생각했다.

공장뿅?

명헌이 물었다. 앞만 바라보고 있던 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위치한 도정공장에서 내렸다. 전신주에 빼곡히 앉아 있던 까마귀가 날아올라 저편으로 이동했다.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비둘기들은 현철과 명헌을 피하지 않았다. 건물 입구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직원들이 현철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아이고오, 큰 도련님 오셨구먼. 명헌은 싹싹하게 인사를 하는 현철의 뒤에서 가만 서 있었다. 현철은 그런 명헌을 자신의 친구라고 소개했다.

작금의 사태를 해결할 아주 용한… 그러고 보니 명헌아, 넌 뭐냐? 무당?

현철이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명헌은 뒷짐을 진 채 고개를 미세하게 모로 꺾었다.

점쟁이뿅.

어른들은 현철과 명헌에게 밍숭맹숭한 커피를 내어주며 애들까지 나설 문제가 아니라며 웃었다. 아마도 옆 농가에서 약을 잘못 썼거나 오수가 흘러나온 걸 작은 짐승들이 먹어서 그럴 거라면서 말이다. 명헌은 커피와 같이 나온 쌀과자를 오도독 씹어먹었다. 그리고 현철의 귀에 대고 악귀가 있다고 조용히 속삭였다. 현철은 제 귀에 닿아오는 숨결이 무척이나 간지러웠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주요 공정을 맡는 큰 건물은 사람을 비울 수 없다고 했다. 포장을 담당하는 작은 건물에만 직원들을 물리고서, 현철은 명헌이 시키는 대로 양은대야에 물을 떠왔다. 방금 전까지 과일을 깎아먹었던 과도를 입에 문 명헌은 평온해보였다.

너도 나가뿅.

현철은 건물 입구의 유리문에 이마를 댄 채 명헌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반듯한 어깨는 떨림이 없었으나 동그란 머리는 이따금 움직였다. 몇몇 어른들은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떠들어댔다. 그래도 쉬어서 좋다는 어른들도, 굵은소금을 이미 한 바가지 퍼온 어른들도 있었다. 명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내가 이겼뿅.

그렇게 말하는 명헌의 왼쪽 눈은 흉하게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굵은소금을 공장 앞에 뿌리다 말고 명헌은 흙바닥에 속을 게워냈다. 현철은 그제야 명헌이 선뜻 제안한 일이 가볍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하얗게 질린 명헌을 부축하고서 거푸 사과했다. 명헌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어른들이 떠다준 물로 입을 헹구고 꿀물을 마신 뒤에야 낯빛이 돌아왔다.

야… 시킨다고 하면 어떡하냐? 미련하기는… 어때, 이제는 좀 괜찮아?

현철은 거친 듯 다정하게 물어왔다. 해결해주겠다고 괜히 나섰던 게 자신이라는 건 명헌이 제일 잘 알았다. 미련한 쪽은 계속 자기 잘못이라 여기는 너뿅. 명헌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현철. 이건 아주 중요한 임무뿅.

기숙사로 돌아온 명헌은 요를 꿰맬 때 쓰는 대바늘을 성냥불로 소독하여 깨끗한 수건 위에 올려두었다.

오늘 밤… 내가 만약 끙끙거리거든 이걸로 나를 찔러뿅.

또 엉뚱한 소리한다.

현철은 툴툴거렸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명헌의 표정이 제법 비장했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관절마다 다 쑤시는 통에, 현철은 또 잠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손마디는 한 번 으스러졌다 붙는 것처럼 어색하게 움직였다. 이래서 공은 제대로 잡겠나. 현철은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명헌은 곤히 자고 있는 듯했다. 반듯하고 짙은 명헌의 눈썹을 한참 응시하던 현철은 조심스럽게 그 위를 손끝으로 만져보았다. 빽빽하고 부드러웠다. 억세고 곱슬거리는 제 체모와는 또 달랐다. 그걸 곱씹어보는데 명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철은 깜짝 놀라, 명헌이 준비해준 대바늘을 들고 왔다. 명헌은 고개를 왼쪽으로 꺾었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며 신음을 흘렸는데 끙끙거림보다는 어딘지 야살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현철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아, 바늘을 든 채 한참을 망설였다. 명헌은 바늘로 찔러 자신을 깨우는 게 왜 중요한지 말해주지 않았다. 현철은 그저 악귀와 관련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볼 뿐이었다.

흐윽, 하… 으응, 아!

명헌의 신음이 점점 커졌다. 현철은 자기도 모르게 명헌의 입을 틀어막았다. 움찔거리는 입술은 체온 때문인지 조금 버석했다. 현철은 저보다는 두껍지 않으나 도톰함을 자랑하는 명헌의 입술이 제 손바닥을 어떻게 간질이는지 또렷하게 느꼈다. 그리고 얌전히 감겨 있던 명헌의 눈이 아무런 조짐도 없이 번쩍 뜨였을 때, 현철은 저도 모르게 스스로를 바늘로 찌르고 말았다. 찔린 검지에서는 피가 몽글몽글 솟았다. 현철은 피를 쪽 빨며 명헌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명헌은 여전히 제 하관을 덮고 있던 현철의 손바닥을 혀로 핥았다.

현철. 쏴봐뿅.

이튿날 연습경기에 현철은 반창고로 손가락을 감은 채 나왔다. 현철은 팔을 내리고 뒤로 물러서며 도발해오는 명헌을 마주한 채 슛을 쐈다. 공은 백보드를 맞고 들어갔다. 슛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 더 바짝 붙지 않을 수 없었다. 명헌은 자신의 압박에 씨익 웃는 현철의 시선을 쫓았다. 작고 날쌘 가드는 성가셨다. 성가셨지만 그뿐이었다. 미스매치니까 알아서 비켜뿅. 그런 신호를 꾸준히 전달해도 현철은 물러서지 않았다. 좋은 자세였다.

뭐가 되기는 되겠뿅.

명헌의 그 조용한 중얼거림을 현철도 들었다. 무더위가 왔다가 가고 바람이 선선해질 쯤, 둘은 같은 눈높이를 가지게 되었다.

 

 

      2. 점쟁이 명헌

 

명헌은 흩뿌려진 쌀알의 형태에서 관능을 읽었다. 마룻바닥으로 촤르르 미끄러지는 작고 흰 알갱이가 복잡다단한 인생사를 결정지을 수는 없는 일. 피워진 향이 붙잡을 수 없으나 그 공간에 존재하듯, 명헌은 그 정도의 감각으로 미래를 짐작했다.

무엇이 보이느냐?

명헌의 어머니가 명헌에게 물었다. 명헌은 저와 제 어머니 앞에 두 손 모아 무릎 꿇은 이들을 가만 보다가 입을 열었다.

진실을 바투 구하지 않는 마음뿅.

거친 숨과 부들부들 떨리는 발끝에는 그 어떤 것도 개입되지 않았다. 외도가 의심되는 남편이라는 뜻은 외도를 한다는 걸 뼈저리게 안다는 것이다. 안정적인 사업의 실패는 한 번도 안정적이었던 적이 없다는 뜻이다. 진학과 취업은 개인의 내부와는 하등 상관이 없었다. 거금의 복채를 내고서 도닥이는 말만 듣고 가길 원하는 이들에게 해줄 말은 없었다. 너무 당연한 일은 빌었다간 화를 입었다. 악몽을 꿔서 그러니 부적이라도 달라는 말에 명헌은 붓을 쥐었다. 한숨을 쉬며 소용없을 거라고 중얼거렸다. 예? 되묻는 말은 뿅, 하고 소거했다. 악몽을 원하니 악몽이 깃든 것이다. 때때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벌하길 즐겼다. 명헌은 그 사실을 깨닫기에 아직 어렸으나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힐난을 반복하고 용서를 번복하다보면 세월이 지나갔다.

신병은 이르게 왔다. 산왕공고의 스카우터와 만난 다음날부터였다. 들뜬 마음에 입맛이 사라졌다 생각했는데 방과 후 농구연습 중 느닷없이 쓰러졌다. 이후 명헌은 며칠을 내리 앓았다. 농구를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막연히 그런 날이 올 수 있다고 생각만 했고 오더라도 쉽게 받아들이는 미래를 그려본 바 없었다.

너 같은 잡신에게 내 몸을 줄 것 같뿅.

명헌이 중얼거렸다. 끝내 거부당한 잡신은 명헌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괴물에게 선택받을 줄 알라.

명헌은 거기에 대고 이렇게 답했다.

짱돌만 아니면 된다뿅.

 

다시 겨울이 찾아왔다. 변한 것은 많지 않았다. 현철은 이제 명헌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았고 삼학년들이 빠져나간 방을 둘이서만 쓰기 시작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대체로 그랬다. 현철의 어깻죽지에서는 여전히 무언가 자라나고 있었다. 짱돌 같던 그가 전체적으로 거대해지는 중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그랬다. 명헌은 팥시루떡을 뜯어먹으며 현철을 머리끝에서 발끝으로 훑었다. 그리고 다시 발끝에서 머리끝으로 훑었다. 훑어볼 때마다 자라는 듯했다.

명헌아. 이번 간식 네 어머님이 해주신 거지? 잘 먹었다고 전해드려라.

현철이 명헌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명헌은 그런 현철의 허벅지에 닿아 있는 새끼손가락으로 탄탄한 피부를 슬그머니 긁었다. 현철의 시선이 닿았다가 달아났다. 간식 덕분에 체육관은 다소 소란스러웠다. 특히나 간밤에 산짐승 습격사건이 있다면 더더욱. 외지에서 온 심마니가 죽었는데 시신의 상태를 미루어 짐작건대 곰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명헌은 간밤에도 제 옆에서 내내 끙끙거리다가 자리를 뜬 현철을 떠올렸다.

통증은 괜찮뿅?

명헌이 현철의 어깻죽지에 손을 올려 부드럽게 문질렀다. 통증 없는 성장은 공허하다고들 했다. 명헌은 현철이 얼마나 단단한 존재가 될지 궁금했다.

너도 한 입 먹을래?

명헌의 어머니는 팥시루떡과 슈크림빵을 섞어 보냈다. 현철은 크게 베어 물었던 슈크림빵을 명헌에게 들이밀었다. 명헌은 슈크림빵에 남은 현철의 잇자국을 보며 고른 치열이 남긴 흔적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뿅. 명헌이 팥시루떡을 권하자 현철은 고개를 저었다.

팥은 텁텁해서 별로.

현철은 명헌이 보다 손아귀에 힘을 주어 어깻죽지를 눌러주자 낮게 신음을 뱉었다. 두드러지기 시작한 근육은 질이 좋아 만지기 좋았다. 둘은 연습이 재개되기 전에 같이 쓰레기를 정리했고 그러고도 시간이 조금 남았다. 현철은 체육관 벽을 등으로 텅텅 쳤다. 좌우로 몸을 틀어 비비다가 다시 텅텅. 저게 곰과 같은 형상이 아니면 뭐뿅? 명헌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서 현철을 바라보았다. 명헌은 의심을 의심으로 놔두는 성정이 못 되었다. 날은 섣달그믐으로 정하였다. 타지에서 농구부로 유학을 온 명헌은 오고 가는 일정을 고려할 때, 일 년에 두 번만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버스만 타고 나가면 되는 현철도 병원에 약을 타러갈 때가 아니면 굳이 집으로 가지 않았다.

설날 전날 아니면 당일, 언제 출발할 거뿅?

현철은 수건을 개며 전날이 아니겠냐고 답했다. 명헌은 그런 현철의 맞은편에서 양말을 갰다. 뵤오오옹… 실망스러움을 한껏 표현하는 명헌에 현철이 왜 그러냐고 키득거렸다.

이제 우리 둘만 지낼 테니뿅.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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