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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돼지...
뇌물수수 | @kickback_love
여우님이 시집가시나, 유독 하늘에서 서럽게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뿅녀-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은 없었다. -뿅, 하는 말투를 쓰기에 마을 사람들에게 으레 뿅녀라고 불렀다.-는 지저분한 머릿수건을 쓰고 유카타 자락을 걷어 올려 단단히 묶은 다음, 맨발로 진흙탕을 걸었다. 꿀, 꾹, 꽥, 꽤엑,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쉼 없이 걸었다. 어느 집에서 돼지 새끼를 잃어버렸나. 잃어버렸다는 얘기는 못들었는데, 뿅. 하며 산길을 조금 올랐다.
“저런. 가엾어라, 뿅.”
소음의 정체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애처롭게 울고 있는 아기 멧돼지였다. 어미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흙탕물에 잔뜩 굴러 자잘한 생채기가 나있었다. 다가가면 도망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발치에 주둥이를 부비는 것을 보고 뿅녀는 그것을 품에 안아들었다. 비에 젖어 착 달라붙은 옷자락에 진흙이 묻는 것도 아랑곳 않고.
기실, 돼지 새끼인 줄 알았다. 잘 먹여 키워서 잡아먹으려고 데려가는 것이었으나, 아기 멧돼지는 그것도 모르고 울음을 멈췄다. 불쌍한 새끼 돼지 같으니.
“철아, 그러면 안돼, 뿅.”
뿅녀가 키우는 아기 돼지의 이름은 철이었다. 딱히 무언가 의미를 넣어서 지은 것은 아니었다. 지극정성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좋은 도토리만 먹여 키운 덕에, 살이 오동통하게 오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상하좌우 사방으로 무럭무럭 자라서 웬만한 멧돼지 저리가라 하는 덩치가 되었다. 그리고 뿅녀가 성인이 되는 해의 생일도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그날은 뿅녀의 생일날이었다. 칼을 갈기 위해 물을 길어 오던 뿅녀는 철이가 잘 있는지 보기 위해 슬쩍 우리에 들렀다.
“뿅그머니나!”
뿅, 소리가 나더니 하얀 연기가 철이를 뒤덮었다. 그리고 나온 것은, 머리를 빡빡 깎은 건장한 성인 남성이었다. 아니, 우리 철이는? 놀라고 당황한 뿅녀는 뿅을 붙이는 것도 잊고 비명을 지르다 침착하게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반쯤 가려진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몸은 건장하고 탄탄하며... 뿅녀는 자신이 성인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이명헌은 침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뭐하느라 잠꼬대까지 하면서 자냐.”
쩝쩝거리며 빵을 먹던 현철이 한마디를 하자, 명헌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돼지, 뿅.”
“뭣!!!”
“하아...”
명헌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돼지...
명헌은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그것이 멧돼지가 아니라 털이 좀 났지만 뽀얀 새끼 돼지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들키는 줄 알았네.’
전생의 명헌을 만났던 현철은 사실 멧돼지 수인이었다 ...